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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동지화마을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현재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나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461번 국도를 따라 동지화마을에서 화천읍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동지화고개이다.
정의 1919년 3월 23일 화천면 신읍리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천도교 
관련 인물 노병화(盧秉華)/안종화(安鍾和)/김창희(金昌羲)/한정종(韓丁鍾)/박성록(朴成祿)/이은규(李殷奎)
관련 내용 1919년 3월 3일 김화군 원동면 노병화가 천도교 화천교구에 독립선언서 90매를 전달하였다. 화천교구는 교인들을 통하여 하남면·화천면·간동면 등에 이를 배포하여 독립운동의 기운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주도자들이 모두 검거되었다.

3월 19일 화천면 신읍리 천도교인 안종화·김창희가 협의하여 3월 23일 화천 장날에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김창희는 상서면 구운리, 하남면 논미리, 상서면 노동리, 화천면 풍산리 등에도 연락을 하였다. 그러나 풍산리 이장 강진희(姜陳希)가 배신하여 계획이 발각되어 추진 인물들이 검거되었다. 시위계획을 알게 된 일제 헌병은 23일에 화천읍 경비를 철저하게 강화하였다.

그러나 시위계획이 탄로난 것을 알지 못한 여러 마을에서는 시위를 그대로 추진하였다. 김창희는 23일 아침 집 앞 큰 길에 천도교인들을 불러 모으고 만세시위에 적극 나서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주민 20~30명이 가세하였고, 군중은 신읍리 직동의 물방앗간 부근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화천으로 향했다. 상서면 노동리에서는 한정종이 주민을 인솔하고 신읍리 동지화동에서 합세하였다.

일제 헌병들이 동지화동에서 길을 막고 해산을 요구하였다. 증원된 군중은 헌병들과 맹렬한 격투를 하였다. 김창희·이은규·박성록 등은 헌병들에게 뭇매를 때려 밀치었다. 동지화고개(핑구고개)에서 약 60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화천 읍내로 향하였다. 헌병들은 화천읍에서 헌병과 보병 등 원병이 오자, 다시 해산을 요구하였다. 군중은 증강된 일제 군경과 맞부딪쳐 완강히 저항하며 계속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약 30분 동안 육박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일제 군경의 총격으로 군중은 일단 고개 너머로 피신하였고, 김창희·이은규·박성록 등이 체포되었다. 시위를 총지휘하기로 한 신읍리 천도교도들이 화천읍내로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화천 장터에 모였던 논미리와 구운리 등의 주민들은 시위하지 못하고 해산하였다.
참고 문헌 「김창희 등 9인 판결문」, 1919년 5월 2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25호)」, 1919년 3월 24일 ; 국회도서관,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3, 1979, 12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2, 1971, 549∼55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936∼942쪽.
광복회 강원도지부, 『江原道抗日獨立運動史』Ⅲ, 1992, 335∼338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화천군 화천면 신읍리
주소 강원 화천군 화천읍 신읍리 948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창희 등 9인 판결문」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신읍리 948번지 일대 마을이 동지화 마을이다. 461번 지방국도에서 동지화 마을 북동쪽으로 향하면 직동이 있다. 동지화 마을에서 홍천읍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동지화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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