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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양구군청 앞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군청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지만, 새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거리의 모습이 예전과는 다르다.
정의 1919년 4월 3일 양구군 천도교인들이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4.4.3 양구군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정승원(鄭昇源)/최우명(崔遇明)/김병하(金炳夏)/김창헌(金昌憲)/최기호(崔寄浩)/박의순(朴義淳)/김능손(金能孫)/최은명(崔殷明)/최영구(崔榮九)/김명옥(金明玉)/장흥도(張興道)/장호면(張鎬眠)/엄건섭(嚴建燮)/조돈민(趙敦敏)
관련 내용 양구군에는 천도교 조직을 통하여 만세시위 정보가 전해져 천도교회를 중심으로 한 만세시위가 1919년 3월 말에 추진되었다. 1919년 3월 30일 양구면 용호리의 정승원, 함춘리의 최우명·김병하 등 천도교인들은 양구의 천도교구실에서 모여 4월 5일 천도교도가 일치단결하여 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큰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기를 만들고, 동면 팔랑리 천도교도 김창헌에게 연락하여 동면 천도교인들의 동참을 요청하였다.

양구 장날은 4일과 9일이었지만, 헌병의 엄중한 감시를 피하려고 5일을 거사일로 택하였다. 그러나 일제 관헌의 취체가 엄중해지고 운동자를 잇달아 체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거사일을 4월 2일로 변경하였다. 천도교도들은 비밀리에 계획을 추진하였다. 정승원은 동수리 천도교도 최기호, 용연리 박의순·김능손·최은명의 동참을 이끌고, 또한 함춘리 최영구와 팔랑리 김명옥에게 변경된 사항을 천도교도들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4월 1일 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시위를 하루를 늦추어 3일에 거행하기로 다시 변경하였다.

4월 3일 오전 11시경 천도교인들이 함춘리 최우명의 집으로 모였다. 정승원·최우명·김병하·최영구·최기호·박의순·최은명·김창헌·김명옥·장흥도·장호면 등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죽곡리를 거쳐 양구읍내로 향하였다. 대동리에서 엄건섭·조돈민 등이 합세하였다. 천도교도들이 주도하여 모인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였으나, 양구군청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절규하였다. 18명이 일제 군경에 검거되었고, 이 중 12명이 1년 6개월에서 8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참고 문헌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조선총독부, 1918.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7보)」, 1919년 4월 4일 ; 국회도서관,『한국민족운동사료』3, 1979, 162쪽.
「정승원 등 12인 판결문」, 1919년 5월 2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2, 1971, 556~55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943~944쪽.
광복회 강원도지부, 『강원도항일독립운동사』Ⅲ, 1992, 341~342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하리
주소 강원 양구군 양구읍 하리 34-5
도로명 주소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관공서로 38 일대
위치 고증 「정승원 등 12인 판결문」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양구군청 터는 1918년 발행된「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를 통해 위치를 고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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