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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불법연구회 근거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원형보존 / 불법연구회 관련 건물들은 대부분 원형이 보존·관리되고 있다. 특히 대각전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정의 박중빈이 일제시대 민중들에게 민족교육 및 항일의식을 고취시킨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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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원불교 
관련 인물 박중빈/박정립/조송광/송병조
관련 내용 현재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는 1917년 8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이 조직한 저축조합이 그 시초이며, 1919년 기존의 저축조합을 불법연구회기성조합이라 개칭하였다. 그후 박중빈이 영광 경찰의 탄압으로 일시 변산으로 피신하였다가 1924년 4월 본부를 익산군 북일면 신용리로 옮기면서 불법연구회기성조합을 불법연구회로 개칭하고 정식으로 창립하였다. 불법연구회는 종교공동체 생활을 하며 낮에는 영농·축산 등의 산업활동을 하고 밤에는 교리를 공부하면서 영육쌍전과 주경야독으로 현실사회에서의 이상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하였다. 특히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에게 일본에 의한 조선 지배의 부당함과 조선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역설하면서 민족교육에 힘썼다.

당시 불법연구회의 활동은 1920년대 당시 언론에 보도된 바 있고 독립운동가 박정립(朴正立)·조송광(曺頌廣) 등의 참여나 송벽조(宋碧照)의 일황모욕사건 등으로 일제의 감시와 주목을 받았다.

1937년 이리경찰서에서는 불법연구회 구내 청하원에 불일면순사주재소를 설치하고 3인의 경찰을 배치하여 불법연구회의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억압을 단행하였다. 1943년에는 일본 불교의 산하단체로 만들려는 이른바 황도불교화 정책을 강행하고자 하였으나 1945년 해방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참고 문헌 「안우선 등 13인 판결문」, 1920년 4월 2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불법연구회, 『(1929~1945)불법연구회 사업보고서』.
『동아일보』, 1928년 11월 25일, 「세상풍진 벗어나서 담호반의 이상적 생활, 익산 불법연구회의 특별한 시설」.
황이천, 「내가 내사한 불법연구회」, 『원광』 103호, 1975, 95~97쪽.
박맹수, 「원불교 초기교사와 민족운동」, 『진리 인간 역사』, 교화연구, 1981, 165~195쪽.
신순철, 「일본의 식민지 종교정책과 불법연구회의 대응」, 『원불교사상』 17, 원불교사상연구원, 1994, 735~7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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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용리 344
주소 전북 익산시 신용동 344
도로명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대로 501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28년 11월 25일자 기사와 『(1929~1945)불법연구회 사업보고서』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불법연구회는 현 원불교 중앙총부 내에 관련 시설물이 있으며, 대각전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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