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매산학교 신사참배 거부운동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원형보존 / 1930년대 증축된 교사가 잘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37년 9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한 매산학교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37 신사참재거부운동 |
|---|---|
| 관련 조직 | 남장로회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1930년대에 들어 만주와 중국을 침략한 일제는 한국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이른바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는데, 기독교계 사립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매산학교는 신앙상의 이유로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으나, 일제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일제 당국의 압력에도 순천을 관할하던 남장로회 선교부에서 반대입장을 고수하여 1937년 9월 매산학교는 자진하여 문을 닫는 길을 택했다. 이 학교는 1910년 9월 미국남장로회 한국선교회가 순천군 소안면 청수리(현 순천시 금곡동)에 수업연한 4년의 사숙(私塾)으로 개교하였다. 1911년 순천군 소안면 매곡리(현 순천시 매곡동)에 석조건물로 교사를 신축, 이전하고 1913년 9월 교명을 사립 은성학교로 바꾸었다. 1916년 6월에 일제가 성경과목의 정과(正科) 교육을 강제 금지시킴에 따라 자진폐교했다가 1921년 3월 매산학교(梅山學校)라는 교명으로 다시 개교하였으니, 이때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고 중학교 과정인 2년제의 고등과를 병설하였으며, 1937년 9월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끝까지 불응하다가 결국 자진 폐교하였다. 광복 후 1946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유지재단 명으로 남녀공학인 순천매산중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현재는 매산중·고등학교가 같은 부지내에 자리하고 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37년 9월 29일,「전남의 3교 우 폐지, 순천 양 매산학교와 담양 광덕학교 폐쇄」. 『동아일보』, 1937년 9월 30일,「폐쇄되는 매산양고, 500 재학생은 구제」. 染川覺太郞,『全南事情誌』(下), 1930(경인문화사, 1989, 61쪽). 김수진·한인수,『한국기독교회사-호남편』, 범론사, 1980, 296-297쪽. 순천시사편찬위원회,『순천시사』, 1997, 708~71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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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순천군 순천면 매곡리 |
|---|---|
| 주소 | 전남 순천시 매곡동 147 |
| 도로명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영동길 58 |
| 위치 고증 | 『순천시사』를 통해서 관련 사실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매산학교 폐교 기사(『동아일보』, 1937년 9월 30일)
매산학교 개교기념사진
매산관 정면
매산학교 전경(현 매산중·고등학교)
매산관 후면
매산학교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