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유방리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45번 국도가 확장되면서 옛 도로가 많이 사라졌지만, 현재 유방동 소재 SK충전소로 옛 도로의 일부가 지나고, 그 길은 햇골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그러나 당시 모습을 추적해 볼 수 있는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
| 정의 | 1919년 3월 28일 용인군 모현면과 포곡면 시위대가 합류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김명화(金明花)/김동호(金東浩)/권종목(權鍾穆)/김병하(金秉夏)/권홍규(權洪圭)/정규복(丁奎復)/홍종욱(洪鍾煜)/홍종엽(洪鍾엽)/이인봉(李仁鳳)/김치현(金致賢)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28일 아침, 용인의 북부인 모현면 왕산리(旺山里)와 초부리(草負里)에서 김명화(金明花)·김동호(金東浩) 등이 선도한 시위대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읍내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포곡면 삼계리와 금어리를 거쳐 둔전리와 내사면 대대리에서 수여면 유방리로 이어졌다. 삼계리 도사마을에 사는 권종목·김병하·권홍규 등 200여 명의 행렬이 둔전리와 금어리로 나아가 둔전의 정규복과 100여 시위대와 합류하였다. 금어리에 이르러 홍종욱(洪鍾煜)·홍종엽(洪鍾燁) 형제·이인봉(李仁鳳) 등과 함께 지나는 마을마다 태극기를 전달하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금어리에서 두 무리로 나뉘었는데, 권종목과 홍종욱은 김량장리 방면으로, 홍종엽과 이인봉은 내사면 대대리로 향하였다. 김량장을 향한 시위대는 군중을 규합하여 김량장리 소재 용인군청까지 나아가며 시위를 벌였으나, 군수에 회유로 일시 해산했다. 그러나 다시 모여 이곳 유방리에서 500여 명의 군중이 일제 헌병의 해산 명령에도 투석으로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시위는 발포로 이어졌고 일제의 폭력적 진압으로 정규복·김병선·권홍규 등 5명이 치안을 방해한 혐의로 검거되고, 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해산하였다. |
| 참고 문헌 |
「高第8946호,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0보)」(1919년 3월 29일) 「朝鮮騷擾事件一覽表」(朝鮮總督府警務總監部, 1919년 4월) 「김병선 권홍규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19년 6월 3일) 「권종목 홍종욱 홍종엽 이인봉 판결문」(1919년 6월 28일) 「정규복 판결문」(1919년 5월 13일)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0보)」, 1919년 3월 29일,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7)』;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홍종욱 등 4인 판결문」, 1919년 6월 2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1, 403∼405쪽. 김명섭, 「용인 포곡읍의 3·1만세운동과 독립항쟁 인물」, 용인지역 3·1운동의 전개와 특성 학술발표집, 용인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2004. 김명섭, 『한국사가 기억해야할 용인의 근대역사인물』, 노스보스, 2015, 86∼94쪽 용인문화원 편, 『한국 독립운동과 용인』, 노스보스, 2019, 127~13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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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유방리 |
|---|---|
| 주소 | 경기도 용인시 백옥대로 1225-6 일대 (처인구 유방동 539번지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지역주민과 연구자에 의하면, 모현면과 포곡면 일대 시위대가 일본 군경에 의해 해산당하고 주동자들이 체포된 곳은 유방리의 햇골이며, 지금의 유방동 햇골길 6호 소재 SK충전소 일대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