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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강경찰주재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경찰 주재소 건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1919년 이후에 현재 묘동 파출소로 자리를 옮겨 갔다고 한다. 현재 주재소 자리에는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2008년 조사 때 양강경찰주재소 터 인근에 있었던 괴목골 유래비는 도로 신설에 따라 직선거리로 2백여m 떨어진 괴목교차로 인근으로 이전하였다.
정의 1919년 4월 3일 영동군 양강면 주민 2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년 4월 3일 양강면 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용문(金用文)/박중옥(朴中玉)/노성구(盧成九)
관련 내용 1919년 4월 3일 오후 2시경 박중옥(1885~1942)은 김용문·노성구 등과 함께 괴목리(槐木里)의 경찰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고, 수많은 군중도 뒤따랐다. 앞선 1919년 3월 25일 양강면 묵정리(墨井里)에서 「조선독립신문」이 발견되어 괴목경찰주재소 일경들이 경계 활동을 강화한 일이 있었다. 시위대는 자신들을 제지하려는 순사보(巡査補) 김영환(金令煥)을 구타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당시 만세 운동에 참여한 군중의 수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참고 문헌 「박중옥 외 1인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년 7월 10일).
「박중옥 외 1인 판결문」(고등법원형사부, 1919년 9월 4일).
「朝鮮總督府 內秘補 433; 忠北機第269號: 地方狀況報告」, 1919년 4월 5일,『大正八年 騷擾事件ニ關スル道長官報告綴』4.
「高 第9833號: 獨立運動에 관한 건(제37보)」, 1919년 4월 4일,『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
「密 第102號 其159; 第12號; [電報 : 전국 각지의 시위 상황]」, 1919년 4월 6일,『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1.
「朝特報 第9號: 騷擾事件에 관한 狀況(1919.3.26.-1919.4.5)」, 1919년 4월 7일,『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
조선총독부, 「설천」,『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1918.
金正明,『朝鮮獨立運動』Ⅰ, 東京:原書房, 1967, 50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95∼96쪽.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1, 1122쪽.
박걸순,『충북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국학자료원, 2012, 32쪽.
박걸순, 「일제강점기 충북 영동지역의 민족운동」,『동학학보 』48, 2018,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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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주소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325-2(괴목산막리 2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조선독립운동』Ⅰ권과「박중옥 등 2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지조사에서 마을주민 황봉수(괴목리 거주, 77세)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고증 받았다. 괴목골 유래비에 3·1운동과 관련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 지명 ‘槐木里’와 면사무소가 기록돼 있으나 경찰주재소는 표시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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