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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추풍령헌병분견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헌병분견소 건물은 존재하지 않고, 당시 위치에는 추풍령농협 경제사업장(창고)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19년 4월 5일과 6일 영동군 매곡면 주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5~6 영동군 추풍령헌병분견소 앞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안병문(安秉文), 안광득(安光得), 임봉춘(林奉春), 남도학(南道學), 장출봉(張出鳳)
관련 내용 1919년 4월 4일 노천리·옥전리 등 매곡면민이 격렬한 만세시위를 벌이자 추풍령 헌병분견소 대원 및 수비대가 출동하였다. 일경은 주동 인물인 안병문, 안광덕, 임봉춘, 남도학, 장출봉을 분견소로 압송하였다. 격분한 시위대 가운데 100여 명이 잡혀간 사람들을 구출하고자 추풍령까지 추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5일 새벽 5시경에 해산하였다. 시위대는 다음날 밤 11시에 다시 추풍령헌병분견소를 찾아가 창고를 불태웠고, 6일 오후 11시에 이르러 또 다시 300여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헌병분견소를 공격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저지당하였다.
안병문은 징역 1년 3개월, 안광득과 임봉춘은 징역 1년 2개월, 남도학은 징역 1년, 장출봉은 6개월의 옥고를 치뤘다. 정부는 안병문(1990), 안광덕(1990), 남도학(1990), 임봉춘(1995)에게 각각 건국훈장 애족장(1995), 장출봉(2005)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임봉춘 외 7인 판결문」(1919년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
「임봉춘 외 7인 판결문」(1919년 7월 5일, 고등법원).
「朝鮮總督府 內秘補 460; 忠北機第276號: 地方狀況報告」, 1919년 4월 8일, 『大正八年 騷擾事件ニ關スル道長官報告綴』4.
「高 第10371號: 獨立運動에 관한 건(제39보)」, 1919년 4월 6일,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
조선총독부, 「영동, 옥산동」,『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191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1120~1122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94~95쪽.
金正明, 『朝鮮獨立運動』 Ⅰ, 原書房, 1967, 518·520·522·567·569·573쪽.
박걸순,『충북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국학자료원, 2012, 32쪽.
박걸순, 「일제강점기 충북 영동지역의 민족운동」,『동학학보』48, 2018, 191~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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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영동군 황금면 추풍령리
주소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추풍령리 344-1(추풍령로 48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조선독립운동』 1권 및「임봉춘 외 7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추풍령헌병분소는 2008년 현지조사에서 마을주민인 이대근(추풍리 거주, 당시 86세), 강종근(추풍리 거주, 당시 78세)의 증언을 통하여 당시 위치가 현재 추풍령 농협 뒤 영농자재 판매장 창고임을 확인하였다.『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를 보면 당시 추풍령 헌병주재소는 추풍령면사무소와 시장 사이에 위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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