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신막 구거리 여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주변의 경관과 도로·가옥이 새로 정비되었으나 신막(새술막)의 구거리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 정의 | 1919년 3월 10일 익산군 여산면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정(李侹)/박사국(朴士國)/이병석(李秉釋)/정영모(鄭永模)/고총권(高寵權)/박영진(朴永鎭)/정대원(丁大元) |
| 관련 내용 |
1919년 3월 10일에 전개된 여산 3·1운동의 주동자는 이정·박사국·이병석 등이다. 이들은 여산면 원수리의 정영모 집에서 여러 사람들을 모아 놓고 독립운동에 분발할 것을 강조한 다음 ‘조선자주독립(朝鮮自主獨立)’이라고 크게 쓴 기를 만들어 들고, 여산면 헌병분견소의 남쪽 400m 지점으로 진출하여 약 200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6월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그 이전 3월 3일 읍내 노상에서 고총권이 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를 부르다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어 박영진·정대원 등도 체포되었다. 3월 30일에도 만세시위가 있었다. |
| 참고 문헌 |
「이정 등 판결문」, 1919년 5월 1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고총권 판결문」, 1919년 7월 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517∼520쪽. 전북지역독립운동추모탑건립위원회,『전북지역독립운동사』, 신아출판사,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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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
|---|---|
| 주소 |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389-18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이정 등 판결문」과『전북지역독립운동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판결문에 의하면 원수리 신막(새술막)에서 헌병 2명이 박사국 등을 잡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 다른 기록에는 헌병분견소 앞 400m까지 시위대가 진출하였다고 한다. 원수리에서 헌병분견소까지는 약 2㎞로 헌병분견소(현 여산초등학교 주차장)에서 신막마을로 가는 거리로 위치를 비정하였다. |














여산독립만세운동기념비
당시 여산헌병분견소였던 여산초등학교 주차장
여산 신막마을 원경
서쪽에서 본 여산 신막거리
신막 구거리 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