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다부동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도로의 부설로 전쟁 당시의 모습에서 상당히 변형되었다. |
| 정의 | 국군 제1사단이 1950년 8월 12일부터 21일까지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의 공격을 격퇴하고 방어에 성공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유학산 전투, 가산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1사단, 국군 제11연대, 북한군 제1사단, 북한군 제13사단 |
| 관련 인물 | 백선엽, 최광 |
| 관련 내용 |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1950년 8월 12일 사단 우전방으로서 신주막-진목정-다부동 일대를 방어하게 되었다. 연대는 해평에서 지금까지 치열한 격전을 치렀던 북한군 제13사단 및 제1사단과 결전을 치르게 되었다. 북한군 제13사단 예하부대들은 야음을 이용해 제1대대 방어진지를 뚫고 8월 15일 아침에 전차 7대와 장갑차 5대가 신주막을 거쳐 수정으로 진출하였다. 8월 16일 북한군 1개 연대 병력이 837고지 일대에 진출한데 이어 신주막 부근의 북한군 2개 대대가 제11연대의 방어진지를 공격하였다. 제11연대도 이날 처음 공격에서 희생만 내고 말았는데 이는 대부분의 병력들이 신병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11연대에 증원부대를 투입하지 않는 한 다부동 방어진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신주막 - 다부동에 이르는 전차부대 접근로가 가장 위험했다. 이에 국군 제1사단에 미 제27연대가 배속되어 다부동으로 진출을 기도하는 적의 보전 협동부대를 격멸하고 신주막 - 다부동의 5번 도로를 중심으로 방어하도록 지원되었다. 그 도로 좌우의 감제고지는 제11연대가 방어하도록 임무가 부여되었다. 이날(18일) 저녁 북한군은 전차 5대를 포함한 보전 협동공격을 기도하였다. 북한군은 다부동 접근로에 미군이 투입된 것을 전혀 모르고 사격을 가하며 접근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군의 탄막사격과 국군 제11연대의 집중사격에 의해 격퇴되었다. 8월 21일 아침 제11연대는 5번 도로 좌측의 356고지를 탈환하였다. 이로써 아군은 다부동 접근로 좌우 양측방 감제고지를 장악하는데 성공하였다. 다부동 일대는 아군의 반격작전 시 낙동강 방어선 가운데 최초로 북한군 진지를 돌파한 지역이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159-162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13-3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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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
|---|---|
| 주소 |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292 다부전적기념관 일대 |
| 도로명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486 (다부전적기념관 일대)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국군 제1사단이 1950년 8월 12일부터 21일까지 다부동 일대에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의 남진을 성공적으로 막아냄으로써 대구를 방어할 수 있었음이 확인된다. |














다부동 전투에서 붙잡힌 인민군 포로들
제11연대와 미군의 다부동 전투, 1950. 8. 14.~30『.( 6·25전쟁사』5, 164쪽)
다부동 동쪽 일대 고지
다부동에서 본 유학산 능선
삼거리 일대 주변고지
다부동 북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