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수암산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모습이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50년 8월 12일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가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물러난 이후 8월 25일까지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역습을 실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왜관 전투, 328고지 전투, 유학산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12연대, 북한군 제13사단 |
| 관련 인물 | 백선엽, 김영호 |
| 관련 내용 |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는 1950년 8월 14일 낙동강을 방어하기 위해 수암산(숲데미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제12연대 제2대대는 방어지대 북쪽에 집결한 북한군 제13사단 1개 연대와 369고지에 거점을 구축한 1개 대대 규모의 적에게 반월형으로 포위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제2대대는 공격을 계속하였으나 목표인 369고지가 사단 포병의 사정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화력지원도 받지 못하였다. 대대는 몇 차례 역습을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20일 아침 병력을 재편한 후 사곡동으로 진출해 정면의 적을 견제하였다. 대대는 8월 22일 새벽 4시 수암산과 316고지를 향해 공격을 반복하였지만 병력 손실만 입은 채 목표를 탈취하지 못하였다. 당시 연대전투상보에는 24일 대대 총 손실 349명 중 295명이 실종으로 기록되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국군 제1사단은 사단방어지역을 미 제1기병사단에 인계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수암산을 탈환하고자 했다. 8월 25일 오전 10시 연대특공대가 대대적인 역습을 실시하여 316고지를 탈취하고 이어 오후에는 수암산의 6~7부 능선까지 진출하였으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제12연대는 수암산을 탈환하지 못한 채 미 기병사단과 교대하게 되었다. 미 기병사단 낙동강선에서 반격작전시 수암산 일대로 반격을 감행하여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마침내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북한군은 수암산에서 물러난 후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154-159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13-3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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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마전리 |
|---|---|
| 주소 | 경북 칠곡군 가산면 석적읍 마전리 산48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가 1950년 8월 12일부터 8월 25일까지 수암산 일대 북한군 제13사단의 공격을 방어하여 격렬한 전투를 수행하였음이 확인된다. |














수암산에서 적정을 살피고 있는 제12연대장 박기병 대령과 제2대대장 조성래 소령
수암산 전투상황, 1950. 8. 19.~24『.( 6·25전쟁사』5, 155쪽)
수암산 남쪽
수암산 정상
수암산 동쪽
멀리서 본 수암산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