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철원 감리교회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훼손 / 1937년에 지어진 건물이 6ㆍ25 전쟁 중에 폭격으로 파괴되었으나 전면 출입구 등 건물의 일부가 남아 있다. 철원군에서는 중요 유적지로 보호 관리하고 있으며,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 정의 | 해방 이후 북한의 공산치하에서 기독교 반공청년들이 반공투쟁을 전개한 곳이며 6.25전쟁시기 북한군이 남침를 위한 병영으로 사용하였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철원 기독교청년 반공활동 |
|---|---|
| 관련 조직 | 철원 기독교청년, 애국단 |
| 관련 인물 | 웰본 선교사 |
| 관련 내용 |
철원 감리교회 건물은 지하 1층, 지상에 갤러리가 있는 준 3층 석조건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선교사이자 유명한 설계사인 윌리엄 엠 보리스(Willam. M. Voris)가 설계했다. 대지 1,200평에 건평 198평(가로 24m, 세로 12.2m) 규모에 1층은 소예배실(교육관)과 10개의 분반공부방, 2층은 대예배실이 있었으며, 1936년 착공하여 1937년 9월 준공되었다. 1905년도에 선교사 웰본(E. A. Welbon)이 처음 장로교회로 설립하였고, 이후 강원도 북부지역 남감리교회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909년 교회부지에 사립 배영학교와 교회를 건립하여 신문화교육, 육영사업, 군사훈련, 민족정신 함양에 주력해 왔다. 1919년 강원도 최초의 3ㆍ1운동이 철원에서 일어났을 때 서문거리의 전도회와 더불어 시위운동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항일단체인‘철원애국단’활동도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해방후 이 교회는 38선 이북의 북한지역에 속하게 되어 공산 치하에서의 기독교 청년학생들이 반공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히였던 곳이다. 또 6ㆍ25 당시에는 북한군이 남침준비를 위해 병영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기도처이던 지하실에서 많은 주민이 학살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 건물은 전쟁 때 폭격으로 현재 전면 출입구 등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2008년 10월 24일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복원을 위한 기공예배를 올리고 복원작업을 추진하였다. |
| 참고 문헌 | 철원군지편찬위원회,『 철원군지』, 철원군, 2002, 1760-17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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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
|---|---|
| 주소 | 강원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100-2 |
| 도로명 주소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319 |
| 위치 고증 | 『철원군지』에 관련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1937년에 지어진 건물의 일부가 남아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철원 감리교회(정면)
철원 감리교회
철원 감리교회(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