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서울 환도식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역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중앙청이 철거되고 경복궁이 복원되면서 완전 멸실되었다. |
| 정의 | 북한군의 남침으로 3개월간 수도서울을 공산군에게 빼앗겼다가 1950년 9월 27일 다시 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탈환한 다음 29일 기념환도식을 거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수도사수 결의 및 서울 환도식 |
|---|---|
| 관련 조직 | 국회 |
| 관련 인물 | 이승만, 맥아더, 박정모 |
| 관련 내용 |
북한군의 남침으로 1950년 6월 28일 수도서울은 북한군에게 빼앗겼으나, 옛 중앙청은 전쟁 발발 직후 국회의원들이 수도사수를 결의하고, 서울 수복 후 태극기 게양과 환도식이 이루어진 곳이다. 1950년 6월 27일 새벽 2시 국회의원 100여 명은 대회의실에 모여“100만 시민과 더불어 수도를 사수한다”고 결의문을 채택했다. 3개월 후인 1950년 9월 27일 아침 6시경에는 북한군에 대한 소탕전이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서도 해병대 제2대대 6중대 1소대원들이 중앙청 옥상 밖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9월 29일 정오 중앙청 대회의실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임병직 외무부장관 등 정부 각료와 유엔군 장성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환도식을 거행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중앙청은 1926년 1월 조선총독부 신청사로 지어져 정부수립 후에는 정부청사·대통령 집무실·국회의사당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건물이 철거되었고, 2001년 흥례문이 복원되었다. |
| 참고 문헌 |
중앙일보사 편,『 민족의 증언』1, 중앙일보사, 1983, 22-23쪽. 중앙일보사 편,『 민족의 증언』3, 중앙일보사, 1983, 116-118·123-126쪽. 손정목,「 한국전쟁과 서울의 피해」,『 국토정보』178, 1996. 8, 13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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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중앙청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경복궁 내) |
| 위치 고증 | 전 신민당 의원 정일형의 진술에 따르면, 전쟁 직후 국회가 소집된 곳은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쓰고 있던 중앙청 회의실이었다. |














중앙청 주변(1950년 9월 27일)
미 해병제5연대에 의해 내려지는 중앙청 인공기(1950년 9월 27일)
한국해병대에 의해 중앙청에 게양되는 태극기(1950년 9월 27일)
중앙청이 있었던 경복궁 흥례문 앞(왼쪽)
철거 전의 중앙청 모습
중앙청이 있었던 경복궁 흥례문 앞(오른쪽)
중앙청이 있었던 경복궁 흥례문 앞(광화문 방향)
서울환도식이 개최되기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서울환도식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