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태극단 결성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태극단 결성지는 북한군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 묘소와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
| 정의 | 북한군의 남침 직후인 1950년 6월 말 반공투쟁단체인 태극단이 결성된 곳이며 전쟁기간 다양한 유격 활동을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고양 전투 |
|---|---|
| 관련 조직 | 태극단 |
| 관련 인물 | 이장복, 안영근 |
| 관련 내용 |
태극단은 북한군 치하에서 각 지역별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전체적으로 통합된 반공투쟁단체였다. 이들은 전쟁기간 동안 국군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으며 훈련된 간부도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반공투쟁을 전개했다. 태극단은 북한군 남침 직후인 1950년 6월 말부터 시작하여 수색, 금촌, 백마, 청석, 산남, 교하, 능곡, 광탄, 송포 등지에서 지하무장조직으로 결성되어 8월 중순 무렵 거의 조직을 견고히 하였다. 이후 수색을 기점으로 하여 서울, 수색, 능곡, 일산, 금촌, 문산에 이르기까지 경의선을 따라 조직이 일원화 되었으며, 그 후 일산의 이장복 휘하에 통합되었다. 태극단은 고양군 덕이리에서 조직을 꾸리고, 단장 이장복, 총무 안영근 등이 작전활동을 계획하여 다양한 반공유격활동을 전개하였고, 9·28 서울 수복 무렵에는 대원들이 약 400여명으로 늘어났다.이들 중 일부는 국방부 선무공작대원으로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는데 1950년 12월 9일 입교하여 동년 12월 23일 졸업한 후 북한군 복장으로 전후방에 투입되어 정보활동을 전개하였다. 태극단의 활동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제한된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나, 북한군 치하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활동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평가된다. |
| 참고 문헌 | 조성훈,『 한국전쟁 유격전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3, 33-38쪽. 태극단동지회, 『태극단투쟁사』, 1983, 5쪽. 이정복 증언, 군사편찬연구소 소장 증언록(1980.8.2) NO.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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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고양군 송도면 덕이리 |
|---|---|
| 주소 |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산46-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 유격전사』에 의하면, 1950년 6월 말부터 고양 일대에서 청년들이 자생적으로 태극단을 조직하여 전쟁기간 북한군에 저항하는 유격활동을 전개하였음이 확인된다. |














태극단 참전 기념 현충탑
태극단 사거리 - 태극단 유적지 입구
결성지에 마련된 태극단 합동묘지
태극단 결성지 - 현 고양시 현충탑(태극단 합동묘지)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