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감악산결사대 사당 - 감악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원형보존 / 감악산결사대 사당은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건립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사당내 혈서의 태극기가 위패와 함께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북한군의 남침 초기 감악산 설마리 계곡일대를 중심으로 북한군에 저항하여 활동한 감악산결사대원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민간인유격대 활동 |
|---|---|
| 관련 조직 | 대한의열단, 감악산결사대 |
| 관련 인물 | 유인종 |
| 관련 내용 |
감악산 설마리 계곡은 북한군의 남침 초기 대한의열단 감악산결사대 대원들이 활약했던 곳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서울이 함락되자, 파주지역 반공애국 청장년들과 미처 후퇴하지 못한 국군 장병 일부 등 500여 명이 감악산에 은신하였다. 이들은 봉암사를 본거지로 유인종을 중심으로 대한의열단 감악산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그려 구국투쟁에 목숨을 바칠 것을 혈서로 맹세하고, 서부에는 파평산 무건지구 유격대, 남부에는 노고산 양주지구 남면특공대를 편성하여 활동하였으며, 동부지구에는 대한구국 적암결사대와 마차산 양원유격대가 편성되었다. 각 지역별 결사대원들은 서울이 수복되고, 아군이 북으로 진격할 때까지 북한군 치하에서 내무서 습격은 물론 적색분자 및 부역주동자들을 색출하여 납치, 처단하였다. 일부 귀순자는 정보 요원으로 투입 북한군의 후방점령지구 교란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북한군의 주보급통로인 고랑포간 도로차단작전 및 수없는 교전으로 큰 전과를 세웠다. 그러나 이 와중에 38명의 대원이 희생당하였다. 감악사는 38명 희생자의 위패를 모셔놓고 있다. |
| 참고 문헌 | 조성훈,『 한국전쟁 유격전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3, 29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 2005, 219-238쪽. 북한연구소,『북한민주통일운동사』(경기도미수복지구편), 1990, 480-48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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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 |
|---|---|
| 주소 | 경기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산5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 유격전사』에 의하면, 감악산결사대는 전쟁 발발로 인해 서울이 함락되자 파주 일대의 애국청년들이 국군 장병 일부와 결사대를 조직하여 감악산으로 입산하여 봉암사를 본거지로 유격활동을 전개하였음이 확인된다. |














결사대원 위패
감악사 - 감악산결사대 사당
결사대가 혈서로 맹세한 태극기
감악산 결사대 현충탑(앞)과 감악사(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