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제주 조병창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원형이 멸실되고 그 터만 남아 있다. |
| 정의 | 6·25전쟁 초기부터 국군의 각종 장비와 무기 수리와 제작을 담당하여 전쟁기간 내내 큰 역할을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남침, 중공군의 참전 |
|---|---|
| 관련 조직 | 병기공창, 병기행정본부 |
| 관련 인물 | 채병덕 |
| 관련 내용 |
조병창의 전신인 병기공창은 1949년 1월 15일 옛 일제의 공장시설을 접수해 운영했다. 1949년 12월 15일 국방부에 병기행정본부가 설치되자 그 예하로 흡수됐다. 초대 본부장은 채병덕 육군소장이 맡았으며 본부의 기능은 병기의 연구개발과 각 군의 병기행정 업무를 통할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었다. 6·25전쟁의 발발로 부산을 제외한 모든 생산시설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 파괴됨에 따라 부산의 시설만을 이용하여 수류탄의 생산과 노획병기의 정비 등에 주력하였다.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9·28수복이 이루어지자, 군수관련 기구들은 일시 서울로 이동하였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전세가 악화되어 철수하게 되자, 제2조병창은 제주도로, 본부와 과학기술연구소는 부산으로 각각 이동하여 병기를 생산하였다. 제주 조병창은 군·경이 보유한 일제의 구식화기에 대한 정비지원과 탄약생산 업무 등을 수행하였으며, 부족한 기술인력과 기자재를 임기응변식으로 보충하며 수류탄, 99식 소총탄, 15㎏ 폭탄, 지뢰, 뇌관 등을 생산하여 아군 작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2년 3월 19일 병기행정본부는 해체에 들어가 그 기능을 국방부 제5국(관리국)으로 이관했다. 제5국에서는 연구소와 제1·2조병창을 관리했으며, 그해 11월 15일 2개의 조병창을 국방부 조병창으로 통합했다. |
| 참고 문헌 |
육군본부,『 육군발전사』, 1976, 55-56쪽. 「전국체전 팡파르, 육군 조병창 팀」,《 제민일보》, 2007년 10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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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제주도 제주읍 건입리 |
|---|---|
| 주소 | 제주 제주시 건입동 918 |
| 도로명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임항로 128 |
| 위치 고증 | 『육군발전사』에 의하면, 6·25전쟁 초기부터 제주 조병창이 제주항 맞은 편(현재 현대 아파트와 주유소 자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전쟁기간 내내 소총과 수류탄, 박격포 등 각종 장비의 보수와 제작을 담당하여 전쟁에 크게 기여하였음이 확인된다. |














제주 조병창에서 사용하던 수로
제주 조병창 터 앞제주항의 모습
제주 조병창 우측
제주 조병창 터 좌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