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등포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전투지의 일대에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건설되어 있고, 제방은 일부 남아 있다. |
| 정의 | 국군 혼성 수도사단이 영등포 주변의 북한군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방어선을 치고 전투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한강방어선전투, 영등포전투, 서울수복 시가전 |
|---|---|
| 관련 조직 | 국군 혼성 수도사단, 미 해병 제1연대, 북한군 제4사단 |
| 관련 인물 | 김홍일, 김광해, 이철원 |
| 관련 내용 |
북한군이 수도서울을 점령한 후 국군 수도사단은 영등포방면 한강방어선인 양화교에서 신길동 일대를 1950년 7월 3일까지 방어하였다. 6월 29일 여의도로 도하한 북한군 제4사단은 영등포로의 진출을 시도했으나 국군 혼성 수도사단은 영등포 - 여의도 사이에서 경계 진지를 펴고, 이를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국군 제8연대는 북한군 제4사단의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1개 중대를 여의도 비행장에 투입했으나 북한군의 포격으로 김광해 대위 등이 전사하였다. 그 후에도 여의도비행장을 중심으로 교전이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철원 소령 등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렇지만 북한군의 주도하선이었던 여의도가 막히면서 그들의 한강 도하는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7월 3일 새벽 북한군은 완전히 끊기지 않은 단선 철교를 보수하여 혼성 7사단이 있는 노량진으로 전차를 도하시킴으로써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였다. 영등포에 포진한 혼성수도사단은 이들의 침략에 무력화되어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영등포지구 전투는 북한측이 국군 3,040명을 살상시켰고 화포 및 박격포 28문을 노획했으며 장갑차 4대를 파괴할 정도로 격전이었다. 한편, 인천상륙작전 후 미 해병 제1연대는 9월 20일 새벽부터 전개한 북한군의 역습을 물리치고, 9월 21일 아침에 영등포 탈환전을 개시하여 22일까지 고전 끝에 영등포를 점령한 후 마포로 도강하였다. |
| 참고 문헌 |
육군본부, 『한국전쟁사』, 1983, 140쪽. 강석희, 『조선인민의 정의의 조국해방전사』,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3, 25-26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편, 『소련 군사고문단장 라주바예프의 6·25전쟁보고서』 1, 2001, 29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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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
|---|---|
| 주소 |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2가 94-267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버드나루로2길 8 일대 (영등포동2가)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사』등의 전투사에 의하면 현 한국산재의료원 일대에 혼성 수도사단 병력이 배치되어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시키려 했다. |














영등포 시가전 중인 미 해병대(1950년 9월 21일)
국군이 진지를 구축했던 산재의료원 주변
영등포 전투지에서 본 여의도
서울교에서 본 영등포 전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