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여의도비행장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기타(비행장) |
| 상태 | 멸실 / 새로 아파트, 상가, 도로 등이 건설되어 당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
| 정의 | 북한군의 남침 초기 북한군을 방어하고 국군 지상군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공군부대를 지휘한 공군작전지휘소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여의도비행장 전투, 영등포전투 |
|---|---|
| 관련 조직 | 육군 수도경비사령부 제8연대, 김포지구전투사령부 |
| 관련 인물 | 김광해, 김정렬 |
| 관련 내용 |
1950년 6월 27일 12시 김정렬 공군총참모장은 여의도기지에서 전 지휘관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는 비행단을 전쟁 상황 따라 수원, 대전 등지로 이동하고 각급 부대 병력을 후방의 각 기지로 이동시켜 차기 작전에 대비할 것을 결정했다. 전황이 악화되자 이날 18시에 기지에 있던 연락기와 훈련기를 수원기지로 이동하도록 했고, 1,000드럼의 항공용 연료 중 500드럼을 영등포역에서 열차로 수원, 대전 등지로 분산시켰다. 공군이 철수한 이후 여의도비행장 주변은 혼성수도사단 8연대가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방어선을 펼쳤다. 6월 29일 8연대는 여의도 비행장 주변에서 북한군 제4사단 예하부대의 야포 공격을 받아 여의도비행장을 빼앗겼지만 다음날 다시 탈환하는 등 격전을 펼쳤다. 그리하여 제8연대는 북한의 주공격선인 여의도 도하를 저지하여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서울 수복 후 공군은 여의도기지에서 F-51기 훈련비행을 실시한 후 북한지역, 중서부전선으로 출격했다. 회현동에 있다가 전쟁 중 후방으로 옮겼던 공군본부는 1955년 1월 대구에서 서울로 이전해오면서, 1956년 7월 대방동에 신청사를 건설할 때까지 여의도비행장에 위치했다. 전쟁 직전인 1950년 5월 14일에는 여의도비행장에서 국민의 성금으로 캐나다로부터 구입한 T-6훈련기를‘건국기’로 이름짓는 명명식이 거행되었다. 건국기는 여의도기지 1대, 대전기지 2대, 제주기지에 2대가 배치되었다. |
| 참고 문헌 |
김정렬, 『김정렬회고록』, 을유문화사, 1993, 172-178쪽. 공군본부, 『6·25전쟁 증언록』, 2002, 156-157·172·314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 2005, 68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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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
|---|---|
| 주소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37, 47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당시 공군 간부인 장지량, 김동호 장군 등의 증언과 50년대 여의도비행장 사진자료에 근거했다. 전쟁 발발 당시 공군본부는 회현동에 있었는데, 서울 수복 후 잠시 되돌아 왔다가 1950년 12월부터 1955년까지 대구에 있었다. |














항공사진으로 본 여의도
전쟁 당시 여의도비행장(1950년 7월 16일)
여의도비행장과 공군작전지휘소가 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