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상무대(尙武臺)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1994년 12월 전남 장성 삼서면으로 이전한 후 상무대 터에는 광주민주화항쟁의 자취를 기념하기 위해 5·18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옛 상무대 정문에‘상무대 옛터’라는 표지석만 남아 있다. |
| 정의 |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보병, 포병, 통신병학교가 설치되어 초급 장교를 양성했던 상무대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육군종합학교 창설 |
|---|---|
| 관련 조직 | 보병학교, 포병학교, 기계화학교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6·25전쟁 기간 한국군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군사학교의 증설과 발전이었다. 보병학교와 포병학교, 기계화학교 등으로 편성된 상무대(尙武臺)는‘무용(武勇)을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명명했다. 정부수립 후 포병학교, 공병학교, 보병 등 각 병과학교가 창설되어 초급장교의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각 병과학교는 개교 이후 확고한 기반이 이뤄지기 전에 1950년 7월 8일 임시 폐교된 후 육군종합학교에 흡수 통합돼 각 병과의 초급장교를 양성하다 다시 각 병과학교로 전환했다. 그 후 육군은 교육발전의 중요성을 감안해 1951년 8월 1일 육군교육총감부를 부산에 설치했고, 그해 11월 1일 광주로 이동되어 1952년 1월 정식 개교했다. 상무대는 전후 화학학교가 추가로 설치되어 모두 5개 전투병과 학교로 이루어져 광주를 상징하는 부대로 자리 잡았으나, 1994년 12월 전남 장성 삼서면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상무대 터는 아파트 단지로 변했으나, 일부는 광주민주화항쟁을 기념하는 5·18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정훈국,『 한국전란 2년지』, 국방부, 1953, 208쪽. 한국전쟁학회편, 「6·25전쟁 남긴 포로문제」, 『한국현대사의 재조명』, 명인문화사, 2007, 527쪽. 백기인,「 병과학교의 교육훈련」,《 국방일보》, 2008년 7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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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광주군 극락면 치평리 |
|---|---|
| 주소 | 광주 서구 치평동 1249, 1258 일대 |
| 도로명 주소 | 광주광역시 서구 시청로 27 일대 |
| 위치 고증 | 『한국전란2년지』에 의하면, 1952년 1월 초급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상무대(교육총감부의 전신)가 창설되었음이 확인되고, 현재 옛 상무대 정문에‘상무대 옛터’라는 표지석이 남아 있다. |














상무대 첫 개방행사(1952. 3. 1, 광주시,『 사진으로 본 광주 100년』, 1989, 168쪽)
개설 당시 상무대 전경(『광주일보』제공)
상무대 터에서 시청으로 가는 도로
상무대 터 우측 도로
상무대 정문이 있었던 자리
상무대 터 입구 맞은편 시가
과거 이곳이 상무대였음을 알리는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