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육군 제1사단사령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재반격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자리는 그대로이나, 당시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
| 정의 | 1951년 3월 서울 재수복작전 당시 작전을 담당했던 국군 제1사단의 사령부가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1 서울 재수복작전 |
|---|---|
| 관련 조직 | 육군 제1사단 |
| 관련 인물 | 백선엽 |
| 관련 내용 |
중공군의 참전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1·4후퇴로 수도서울을 다시 상실하였다. 1951년 3월 국군 제1사단과 미 제3사단은 서울 재수복 임무를 부여받았다. 국군 제1사단은 한강 도하 주력부대로서 제15연대를 영등포 - 한강교 부근에 배치하고, 제12연대를 김포 일대에, 제11연대를 예비부대로 배치하여 시가전에 대비했다. 미 제3사단도 잠실 일대에서 서울 동북방의 쌍문동과 퇴계원을 잇는 선의 진격을 구상하고 있었다. 리지웨이 미 제8군사령관은 이 작전에서 공산군의 전선을 서부의 중공군과 동부의 북한군을 분리시킨 다음 남쪽과 동쪽으로부터 서울을 포위한다는 구상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포위전략에 위협을 느낀 북한군과 중공군이 1951년 3월 13일 저녁부터 14일 새벽 사이에 서울에서 철수하면서 전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군과 유엔군은 1·4후퇴 후 서울을 두 달여 만인 1951년 3월 15일 서울을 재수복함으로써 수도를 회복시켰다는 정치적 상징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심리적 자존심을 회복하여 이후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됐다. 현재 봉래초등학교는 중공군의 개입 이후 서울을 재차 빼앗긴 후 1951년 3월 재탈환할 때 작전을 담당했던 국군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 사령부 자리였다. 사령부는 곧 서대문의 금화초등학교로 이전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5, 1972, 779쪽. 백선엽,『 길고 긴 여름날 1950년 6월 25일』, 지구촌, 1999, 177쪽. 백남혁 편,『 백선엽 장군 6·25전쟁 기록사진집』, 선양사, 2000, 86-8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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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 |
|---|---|
| 주소 | 서울 중구 만리동2가 2 봉래초등학교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손기정로 73 (봉래초등학교) |
| 위치 고증 | 백선엽·김국주 장군 등의 증언과『한국전쟁사』5권에 의하면 제1사단 사령부는 만리동에 있는 초등학교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현재 만리동에는 봉래초등학교가 들어서 있어 이 위치를 비정하였다. |














제1사단사령부 지휘소를 방문한 영국군 장교들(백선엽 장군 전쟁기록사진집에서 발췌)
서울 재수복시 1사단 사령부 터 - 봉래초등학교 교사
봉래초등학교(좌측)
봉래초등학교(우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