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인천역 부근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반격북진작전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변형 / 인천역 주변 일대는 도로 및 건물로 인해 전쟁 당시의 원형이 완전히 변형되어 식별하기 매우 어렵다. |
| 정의 | 1950년 9월 15일 한국 해병대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인천역 부근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인천상륙작전 |
|---|---|
| 관련 조직 | 한국 해병 제1연대 제3대대 |
| 관련 인물 | 김성은 |
| 관련 내용 |
국군과 유엔군이 1950년 9월 15일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미 제5해병연대의 예비대가 된 한국해병 제3대대는 적색해안에 상륙하여 지금의 대한제분 쪽으로 철로를 건너 응봉산의 서쪽 하단부로 진출하였다. 9월 16일 한국 해병대는 인천역 부근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인천역을 중심으로 시가지에 놓여있는 경인철도를 경계로 하여 그 남쪽의 응봉산 일대와 도심지역을 제3대대가 맡고, 경인철도 북쪽의 공장지대를 제1대대가 담당하였다. 전날의 항공, 함포와 상륙부대의 돌격작전에서 살아남은 북한군의 대부분은 이미 인천지역을 벗어나 도주한 것으로 보였으나, 상당수가 민간인으로 변장하여 인천역 주변 주택가에 숨어 있었고, 이에 한국해병대가 북한군 색출 작전을 수행하였다. 제3대대 지역에 비하여 주택가가 적고 대부분 공장지대로 되어 있는 경인철도 북쪽에서의 소탕작전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제1대대는 인천 동쪽으로 진출하여 동공원(현재 인천여상) 일대에 있던 북한군을 대부분 소탕하였다. 이후 한국해병대는 시내 주요 공공시설을 장악하고, 야간에는 시내·외 주요 장소에 대한 경비와 정찰활동을 강화하였다. 소탕작전 첫날 해병대의 전과는 포로만으로도 181명에달하였으며 다수의 북한군을 사살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3, 1982, 171-175쪽. 군사편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409-410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인천시 북성동 |
|---|---|
| 주소 | 인천 중구 북성동1가 3번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사』3권에 의하면, 유엔군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한국해병대가 9월 16일 인천역 주변 일대의 북한군을 격퇴하고 시가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였음이 확인된다. |














1951년의 인천역 부근
시가지 수색 중인 유엔군(1950년 9월 16일)
폐허가 된 인천시가지(1950년 9월 17일)
유엔군 상륙 당시 인천역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인천역 앞 삼거리(시내 방향)
인천역
인천역 주변 모습(인천항 방향)
인천역 앞(동인천 방향)
인천시가 - 북한군을 생포한 유엔군들(1950년 9월 17일)
인천시가(1950년 9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