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강원의병 주둔지 - 봉복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복원 / 봉복사는 당시 소각되었다가 중건하였고 6·25전쟁 때 다시 불에 탄 것을 복원한 상태이며, 정미의병 당시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
| 정의 | 민긍호의병을 비롯한 횡성과 원주 일대의 의병이 주둔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오정묵(吳正默)/민긍호(閔肯鎬) |
| 관련 내용 |
강원도 원주 일대에서는 군대해산 후 원주진위대의 봉기를 신호탄으로 많은 의병들이 일어나 활동하였다. 이들 항일의병들은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악을 주무대로 게릴라전술을 전개할 때 휴식과 식량을 보충하는데 사찰이 가장 용이한 장소였기 때문이며, 혹독한 겨울철에 사찰이 안식처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원주 일대의 의병들은 횡성군 갑천면 갑천리 부근 및 그 동방 2리에 있는 봉복사(鳳腹寺)를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횡성군 청룡면 갈풍리 출신의 순교 겸 포수계장인 오정묵(吳正默)은 1907년 8월 포수 20여 명을 인솔하고 봉복사로 수렵하러 나갔다가 민긍호 의병장의 권유에 의해 의병활동에 투신하였을 정도로 봉복사는 의병들의 근거지이자 활동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1908년 9월 일본군은 횡성-원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이 인근 부락에서 물자를 조달하고 월동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좌등(佐藤) 대위에게 보병 2개 소대와 기관총을 주어 의병을 토벌하게 하였다. 이 부대는 9월 22일 횡성에 도착, 23일 오후 1시경 갑천리와 봉복사의 의병 350명을 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의병 50명이 전사하였고, 일본군은 의병의 근거지인 봉복사를 불태워버렸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3-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598·696쪽.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51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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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갑천리 동쪽 2리에 있는 봉복사 |
|---|---|
| 주소 |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청일로 909-88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선폭도토벌지』(『독립운동사자료집』3권에 수록)에 봉복사에 주둔해 있던 의병과 일군과의 전투에 관한 기록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














봉복사 전경(2021년 촬영)
봉복사 전경(2021년 촬영)
봉복사 입구(201년 촬영)
봉복사 대웅전(2021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