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진동초등학교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학교의 신축공사로 인해 전쟁 당시의 원형에서 상당히 변형되었다. |
| 정의 | 1950년 8월 3일 미 제25산 27연대가 북한군 제6사단의 기습공격을 격퇴하고 낙동강방어선 서측을 안정적으로 방어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마산 부근 전투, 진동리 전투 |
|---|---|
| 관련 조직 | 미 제25사단, 북한군 제6사단 |
| 관련 인물 | 킨 소장, 방호산 소장 |
| 관련 내용 |
1950년 8월초 미 제25사단이 마산 서측의 방어임무를 부여받았다. 진동초등학교는 254고지에서 뻗어 내린 능선 바로 아래인 해안도로와 함안 도로의 교차점에 있었다. 교정에는 미 제27연대본부와 체크 대대, 155밀리 곡사포 A포대가 야영하고 있었고, 근처에는 미 제8포병대대가 진지를 구축하였다. 1950년 8월 3일 미 제27연대 본부와 체크대대를 목표로 북한군 제6사단 예하부대가 기습공격을 개시하였다. 254고지의 미군 경계병들은 국군이 지원하러 온 것으로 대비에 소홀하다가 기습을 당하였다. 하지만 제27연대 예하 A중대가 곧이어 지원사격하에서 역습에 나서 254고지를 탈환하였다. 한편 북한군 제6사단은 8월 2일 주간에 경계배치가 되어 있지 않은 진동리의 연대 지휘소와 포병진지를 발견하고, 마산에는 전투부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에 북한군 제6사단장 방호산은 제1연대를 서북산 남쪽으로 침투, 우회시켜 진동리를 기습한 것이었다. 북한군은 체크대대가 철수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밤중에 진동리로 복귀한 것을 몰랐으며 이날 1개 대대로 기습공격했지만 반격을 당해 큰 손실을 입고 퇴각하였다. 그 결과 북한군 제6사단은 그 동안의 전투 손실이 누적되어 8월 3일 저녁에는 전투력이 반감되고 공격의 핵심이던 전차부대도 연료의 부족으로 운용에 제한을 받았다. 그 결과 축차적으로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려던 유엔군사령부에 일정한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285-287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25-33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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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창원군 진동면 진동리 |
|---|---|
| 주소 | 경남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113-1 일대 |
| 도로명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삼진의거대로 661-22 일대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1950년 8월 3일 미 제27연대본부가 위치한 진동초등학교 주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접전하여 승리로 이끈 전투였음이 확인된다. |














진동초등학교(측면)
진동초등학교 정문
진동초등학교(정면)
진동초등학교 앞 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