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송우리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송우리 전투지는 주변 도로와 건물 건축으로 인하여 전쟁 당시의 원형이 완전히 변형되었다. 다만 주변 고지의 형태는 남아있어 당시 방어배치를 짐작할 수 있다. |
| 정의 |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3연대가 송우리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방어하였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북한군 남침 |
|---|---|
| 관련 조직 | 수도경비사령부 제3연대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북한군의 남침시 송우리는 서쪽으로 회암령을 넘어 동두천 가도의 덕정과 횡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방어 요충지였다. 여기에서 국군이 북한군을 방어하지 못하면 8km 후방의 축석령 사이에 방어를 할 만한 곳이 없었다. 때문에 국군 제3연대는 태봉산과 해룡산 동남쪽의 178고지를 방패삼아 이곳에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연대는 송우교를 중심으로 좌우 측방에서 각각 방어부대를 배치하고 장송우 북쪽 134고지에 연대관측소를 설치하였다. 연대가 혼성병력을 재정비하면서 계속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1950년 6월 25일 오후 5시경 북한군 포병사격과 함께 기계화 부대가 출현하였다. 북한군은 마치 나뭇단을 쌓아 실은 우마차 대열처럼 위장을 하고 남진을 계속하였다. 이에 연대는 81mm 박격포를 비롯하여 기관총 사격을 집중하였으나 적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방어지대로 접근하였다. 북한군 전차 8대가 포격과 기총으로 연대 방어진지를 위협하였다. 연대는 북한군 보병을 비롯하여 전차와 자주포 등 각종 차량이 남진하자 더 이상 저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장마저 행방불명되면서 연대는 각 대대별로 철수하게 되었다. 제3연대의 송우리 방어선이 무너짐으로써 포천지역은 무인지대가 되고 말았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 전쟁사』2, 2004, 364-367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113-11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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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 |
|---|---|
| 주소 | 경기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8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 전쟁사』2권에 의하면, 1950년 6월 25일 제7사단의 최후저항선인 송우리 전투에서 증원부대인 수도경비사령부 제3연대가 적의 공격을 저지하였지만 전투력의 열세로 송우리에서 철수하게 되었음이 확인된다. |














송우삼거리
송우리 3번 국도(포천 방향)
송우리 일대 고지의 모습
송우리 3번 국도(의정부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