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서울역 시가전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반격북진작전 |
| 종류 | 건물/거리 |
| 상태 | 변형 / 서울역사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서울역 인근에 당시 전투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
| 정의 | 1950년 9월 28일 서울수복작전시 서울역 인근에서 시가전이 전개되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서울역 시가전, 인천상륙작전 |
|---|---|
| 관련 조직 | 해병 제2대대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직후 한국과 미군 해병대가 서을방면으로 진공을 계속하였다. 9월 26일 아침 미 해병 제1연대에 배속되어 탈환전을 벌이던 국군 해병대 제2대대가 서울역 앞을 진격하였다. 그때 남대문지하도와 대한여행사(현 남대문경찰서) 옥상에 배치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대대 제5중대의 진격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2대대에서는 화염방사기를 동원하는 등 서울역 광장을 사이에 두고 큰 길 건너편의 건물들을 방벽으로 삼아 격전이 벌어졌다. 북한군은 남대문지하도에서 저항을 계속했으며 인근 도로에 바리케이트 혹은 지뢰를 매설하여 저항하였고, 민가의 창이나 골목에 기관총좌를 설치하여 총격을 가해왔다. 남대문 앞에서도 그들은 75밀리 대전차포 2문으로 한·미 해병대의 전차를 공격했다. 이 당시 서울역 외에도 남대문, 시청 앞, 중앙청 앞 등지에서도 격렬한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한편, 서울역은 북한군 남침 직후와 1.4후퇴 시기 많은 서울 시민들이 열차를 이용하여 피난한 곳이며, 1950년 6월 27일 새벽 이승만 대통령이 특별열차로 대전으로 피난한 곳이기도 하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손원일 증언록」, 1977, 8쪽. 중앙일보사 편,『 민족의 증언』2, 1983, 69쪽. 중앙일보사 편,『 민족의 증언』3, 1983, 114쪽.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인천상륙작전』, 1983, 312-313쪽. 최창선,『 브라질의 하늘 아래에서』, 토함원, 2002, 124-125쪽. 해군본부 정훈감실,『 해군일화집』1, 해군본부, 2004(복간), 14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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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 |
|---|---|
| 주소 | 서울 중구 봉래동2가 122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한강대로 405 |
| 위치 고증 | 당시 참전했던 해군 총참모장 손원일 제독을 비롯한 참전자의 증언과『인천상륙작전』등의 연구에 따랐다. |














시가전 직후 불타는 서울역과 그 주변
폭격으로 파괴된 서울역 플랫폼
서울수복 후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1950년 10월 1일)
남대문에서 본 서울역
서울역 광장
옛 서울역사
갈월동에서 본 서울역 앞
서울역 주변(1951년 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