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포비행장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기타(비행장) |
| 상태 | 변형 / 김포공항이 대규모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전쟁 당시 전투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
| 정의 | 개성 남쪽의 한강 하구에서 김포반도로 도하하여 영등포를 향해 진격하려는 북한군 제6사단의 남진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투를 벌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육군 김포지구전투사령부,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 제2대대 |
| 관련 인물 | 계인주, 우병옥, 최복수 |
| 관련 내용 |
북한군의 남침 직후 육군본부는 북한군이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로 침입할 경우 서울을 위협받게되고 아울러 한강 이북의 모든 국군부대가 병참선과 퇴로를 잃게 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육본은 즉시 김포 방어를 위해 육군 정보, 보병, 공병학교와 제12연대 2대대, 독립 기갑연대, 보국대대 등의 혼성부대로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하였다. 김포비행장 부근에 위치한 육군정보학교인 남산학교 교장 계인주(桂仁珠) 대령은 사령관에 임명되어 북한군 제6사단의 측면공격을 한 때 지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의 주력부대가 우세한 화력을 앞세워 강녕포(康寧浦)로 도하하고, 28일에는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자 김포지구전투사령부는 북한군의 영등포 도하로 인한 퇴로 차단을 우려하여 우선 부평지구로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 28일 정오를 전후하여 북한군은 김포읍으로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령관 계인주 대령이 실종되자, 참모장인 최복수(崔福洙) 중령이 지휘를 맡아 병력을 수습한 후 김포비행장을 탈환하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김포가도를 따라 비행장을 목표로 진격하자, 그는 병력을 경인가도의 소사로 이동시켰다. 시흥지구전투사령부에서는 제3사단 참모장인 우병옥(禹炳玉) 중령을 새로 김포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한 다음 김포비행장의 탈환을 명하였으나, 장비와 병력의 열세로 다시 소사로 후퇴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참전자 증언록』 1, 2003, 350, 510-513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2, 2005, 255-26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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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송정리 |
|---|---|
| 주소 | 서울 강서구 공항동 100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하늘길 38 |
| 위치 고증 | 참전자 증언록과『6·25전쟁사』2권 등에 의하면, 김포비행장을 둘러싸고 피·아간에 교전이 격렬하게 벌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














불타고 있는 김포비행장 건물
김포공항 전경
폭격당한 김포비행장(1950년 6월 25일)
김포공항 국내선 터미널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