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안병범 대령 자결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멸실 / 순의비 마저 국립현충원으로 이전하여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
| 정의 | 수도청년방위대 고문인 안병범 대령이 북한군의 남침이 개시된 후 인왕산으로 철수하여 유격전을 전개하다가 마지막으로 자결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인왕산 유격전 |
|---|---|
| 관련 조직 | 수도청년방위대 |
| 관련 인물 | 안병범, 안광호, 안광석 |
| 관련 내용 |
북한군의 남침 직후 수도청년방위대 고문이었던 안병범(安秉範, 1890. 8. 17~1950. 7. 31) 대령은 창동 지역에서 낙오병을 수습하다가, 북한군의 포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 고립되었다. 서울 함락 후, 그는 인왕산으로 피신하여 유격대 조직을 위해 노력하다가 호응하는 이가 없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였다. 그는 전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7월 29일 인왕산에서 장남 광호에게 적과 싸워 국토를 지키지 못하고 더 이상 숨어서 동포들의 도탄을 눈앞에 본다는 것은 자신을 욕되게 생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7월 31일 자결했다. 이때 그의 나이 61세였다. 안병범은 경기도 병점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한국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하여 군인의 길을 걸었다. 해방 후 육군 대령으로 임명된 이래 부산지구병사구사령관, 수도 청년방위대 고문 등으로서 활동했다. 셋째 아들 광석은 육사 2기로 입교했으나 전쟁 직후 육사 동쪽 93고지에서 북한군과 교전하던 중 전사하였고, 큰 아들 광호와 둘째 아들 광수가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는 등 안병범 4부자는 국토방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50년 11월 2일, 2면 2단,「 이 유지 받들자! 안병범 대령의 자결판명」. 『동아일보』, 1950년 11월 15일, 2면 8단,「 고 안병범 준장 명일 환영식 집행」. 『동아일보』, 1955년 10월 27일, 3면 4단,「 안병범장군순의비 제막식 엄수」. 『조선일보』, 1969년 7월 25일,「 고 안병범 장군 순의비 증수 제막」. 국도신문사,『 전몰용사의 수기』, 1956, 23-28쪽. 육군본부,『 의장 안병범』, 1989, 318-340쪽. 조성훈,『 한국전쟁의 유격전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3, 82-8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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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
|---|---|
| 주소 |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 1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4길 213 |
| 위치 고증 | 장군의 자결 관련 기사를 비롯한 순의비(殉義碑) 건립 및 이전 기사에 의하면, 휴전 후인 1955년 10월 25일 신응균, 김석원 등이 참석하여 안병범 장군의 자결지 인근으로 추정되는 세검정 승가사 입구에 그의 순의비를 세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














승가사 입구
안병범 자결지 주변 모습 - 승가사 가는길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옮겨져있는 안병범 장군 순의비
고 안병범 준장 환영식 기사(『동아일보』, 1950년 11월 15일)
안병범 대령 자결 관련기사(『동아일보』, 1950년 1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