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현수 대령 전사지 - 정동 중앙방송국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당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지번이 분할되어 덕수초등학교, 조선일보미술관, 오양수산빌딩 등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50년 6월 28일 새벽 중앙방송국 폭파 임무를 띄고 들어간 국방부 보도과장 김현수 대령이 북한군과 대치하다가 전사한 곳 |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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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내용 |
북한군의 남침 직후 중앙방송국은 전선의 상황 및 군관련 보도에 대한 일원화 방침에 따라 6월 26일부터 사실상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 관할 아래에 있었다. 당시 방송국에는 홍천 중위 등 정훈국 요원들이 전황 보도를 담당하였다. 이때 정훈국 보도과는 국군이 후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중앙방송국을 통하여“정부와 국군을 신뢰하여 안심하라”고 방송을 하기도 했다. 북한군의 서울진입이 가까워지자 1950년 6월 28일 새벽 보도과장 김현수 당시 대령은 보도책임자로서 북한군이 방송국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방송기자재를 폭파하려고 방송국에 갔다가 이미 잠입해 있던 북한군과 대치하다가 적병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김현수 대령은 전남 보성출신으로 일제말에 학도병으로 나가 일본 구루메 예비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소위가 되었다. 광복 후 군사영어학교를 수료하고 참위로 임관하여 제15연대장, 육본작전교육국 방위과장을 거쳐 1949년 9월부터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장으로 복무했다. 김현수 대령은 후에 준장으로 추서되었으며 그의 묘는 국립현충원 장군묘역(1-22호)에 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50년 10월 10일,「 전 국방부 보도과장 김현수대령 전사전말」. 김석원,『 노병의 한』, 육법사, 1977, 281쪽. 중앙일보사편,『 민족의 증언』1, 중앙일보사, 1983, 39-4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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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1 |
|---|---|
| 주소 | 서울 중구 정동 1-76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140 |
| 위치 고증 | 정훈국 장교 출신인 이원복과 경성방송국 및 중앙방송국 출신자들의 증언에 의하여 덕수초등학교 뒷편과 조선일보미술관, 오양수산빌딩 일부를 아우르는 지역이 당시 방송국임을 확인했다. 덕수초등학교에 첫 방송비가 있어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














김현수 보도과장이 전사했던 중앙방송국
김현수 당시 대령 전사 전말(下) (『동아일보』, 1950년 10월 11일)
덕수초등학교에서 본 중앙방송국 터와 첫방송 터 기념비
김현수 당시 대령 전사 전말(上) (『동아일보』, 1950년 10월 10일)
프레스센터에서 본 중앙방송국 터 - 현 조선일보 정동 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