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경무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국가수호)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1993년 11월 옛 청와대 본관인 경무대가 철거되었고, 현재는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 터로 복원되었다. |
| 정의 |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북한군의 남침 직후부터 6월 27일까지 3일간 븍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전쟁지도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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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승만(李承晩) |
| 관련 내용 |
경무대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조선총독부의 총독관저로 지은 건물이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정청장이었던 하지 중장이 1948년 정부 수립까지 관저로 사용하였으며,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시 이승만 대통령은 비원 연못에서 낚시를 즐기던 중 전쟁 사실을 보고 받았다. 이 대통령은 27일 새벽 3시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미리 준비한 대국민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날 전황이 다급해지자 그는 황급히 경무대를 떠나 남쪽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9월 28일 서울 환도식에 참석한 후에야 경무대에 복귀하였지만 1951년 1·4후퇴로 다시 경무대를 떠났다 1952년 4월에 돌아왔다. 전쟁 중 경무대는 중앙청 집무실이 불타는 바람에 대통령 집무실로 쓰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곳에서 38선 북진·휴전반대 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휴전 후에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경무대에서 체결되었다. 한편, 북한군은 서울 점령 후 경무대 내에 있던 이승만 대통령 관련문서를 노획해가기도 하였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48년 8월 6일, 「공보처장 김동성, 경무대를 대통령관저로 사용한다고 발표」. 김행복,『 6·25전쟁과 채병덕 장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2, 197-201쪽. 청와대 홈페이지 http://www.presiden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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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동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청와대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세종로 청와대) |
| 위치 고증 | 당시 언론에 의하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경무대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다. 현재도 청와대가 들어서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경무대 자리에 서있는 구본관 터 표지석
청와대 입구
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