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중앙YMCA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완전변형 / 3층 벽돌양옥 약 600평 규모의 중앙YMCA 회관은 1950년 6·25전쟁 때 불타 파손되었다. 서울YMCA는 1958년 회관재건운동을 개시하여 1967년 대지 990평, 총건평 4,010평, 지하 2층, 지상 7층의 현 회관 건물을 완공하였다. |
| 정의 | 1919년 3·1운동 당시 학생YMCA가 중심이 된 학생단 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신간회 창립대회를 비롯한 각종 민족운동 집회가 개최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3.1 3·1독립만세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박희도(朴熙道) |
| 관련 내용 |
서울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이 독립운동에 관해 처음으로 의견을 교환한 1919년 1월 27일의 대관원 모임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중앙YMCA) 간사 박희도(朴熙道)가 YMCA 회원모집을 명목으로 소집한 모임이었다. 이후 박희도가 근무하던 중앙YMCA회관은 학생단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1903년 10월 '황성기독교청년회'란 이름으로 출범한 중앙YMCA는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현 하나로빌딩(중앙교회) 자리의 옛 건물을 빌어 회소(會所)로 사용하다가 황실을 비롯한 국내 유지들과 미국 백화점 재벌 와너메이커(J.Wanamaker)의 기부를 받아 종로2정목 9번지(현 종로2가 9번지)에 회관 부지를 마련하고 1907년 공사에 들어가 1908년 3층 벽돌양옥 약 600평의 회관을 준공하고 12월 개관식을 거행하였다. 황성기독교청년회는 1913년 명칭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중앙YMCA)로 바꾸었다가, 해방 후 서울YMCA로 개칭되었다. |
| 참고 문헌 |
「경성부시가강계도」(1914) ;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42쪽. 전택부, 『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 범우사, 1994, 83~115쪽. 장규식, 「YMCA학생운동과 3·1운동의 초기 조직화」, 『한국근현대사연구』 20, 2002. 3, 123~12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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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종로2정목 9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종로2가 9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69 (종로2가 서울YMCA) |
| 위치 고증 | 「경성부시가강계도」(1914)에 종로2가에 위치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회관'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














중앙 YMCA회관
중앙 YMCA회관
중앙 YMCA회관 1층 우리은행 앞에 설치된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