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경성서적조합 사무소 터 - 『조선독립신문』인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대성그룹 본사 앞 마당으로 바뀌어 있다.
정의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의 진상을 알리는『조선독립신문』제2, 3, 4호를 인쇄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3 조선독립신문 인쇄
관련 조직 보성사 경성서적조합 
관련 인물 윤익선/이종린/장종건/임승옥/김영조/유병륜/남정우/최치환/이용설
관련 내용 1919년 3월 1일 보성사(普成社)에서『조선독립신문』창간호를 인쇄한 당일 발행인 윤익선(尹益善)이 체포되자, 신문 발행을 주관하던 천도교월보사 주필 이종린(李鍾麟)은 경성부 관훈동 155번지 경성서적조합 사무소로 장소를 옮겨 장종건(張悰鍵)·임승옥(林承玉)·김영조(金榮佻)와 함께 비밀리에 등사판으로『조선독립신문』제2, 3, 4호를 인쇄하였다.『조선독립신문』은 3월 10일 이종린이 체포된 이후 장종건 등이 계승하여 경성부 광화문통 85번지 유병륜(劉秉倫)의 집에서 제5, 6, 7호를 발행하고, 이어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공덕리 195번지 남정우(南政祐)의 집에서 제8, 9호를 발행하였다. 이 사실이 일제 경찰에 탄로나 1919년 3월 25일 장종건·최치환(崔致煥)이 체포되었지만 이후로도『조선독립신문』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이용설(李容卨) 그룹을 비롯한 다양한 계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행되었다.
참고 문헌 「윤익선 등 8인 예심종결결정(경성지방법원)」,1919년 8월 30일 ; 국가보훈처공훈전자사료관.
「윤익선 등 72인 판결문」, 1920년 2월 27일 ; 국가보훈처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5, 1971, 146-149쪽.
「(예심조사)김영조 신문조서」 ; 국사편찬위원회,『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6, 1993, 206~208쪽.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관훈동 155
주소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1919년 5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진행된「김영조 신문조사」및 「윤익선등 8인 예심종결결정」등에 관련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있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3123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1  전화: 041-560-0405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21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