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정인승 집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문화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변형 / 건축 당시의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으나 지붕과 벽 등 일부가 변형되었다. |
| 정의 | 일제의 한국어 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애국운동을 전개한 정인승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42.10.1 조선어학회사건 |
|---|---|
| 관련 조직 | 조선어학회 |
| 관련 인물 | 최현배(崔鉉培) |
| 관련 내용 |
정인승(鄭寅承, 1897~1986)은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출생으로, 호는 건재(健齋)이다. 1925년 3월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미국행을 희망하였으나 집안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25년 4월부터 1935년 8월까지 전라북도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35년 서울로 올라온 뒤 최현배(崔鉉培)를 만나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이사가 되면서 1936년 9월부터 1957년 10월까지 『큰사전』(전 6권) 편찬을 주재하여 완간하였다. 사전 편찬 중이던 1942년 10월 1일 일제가 한국어의 보급과 한글로 된 출판물의 출간을 금지하는 한국어 말살정책을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되어 함흥경찰서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945년 1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 참고 문헌 |
「이극로 등 5인 판결문」, 1945년 8월 1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정인승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신한민보』, 1936년 9월 10일, 「표준어 사정 종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8, 1976, 1011~101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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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129 |
|---|---|
| 주소 | 전북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138-1 |
| 도로명 주소 |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25-5 |
| 위치 고증 | 「이극로 등 5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현 거주자 고병기(72)의 증언 및 기념관에 전시된 자료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다. |














기념관 앞 정인승동상
정인승 집 본채
정인승 집과 기념관 전경
정인승 집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