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한훈 생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홍주의병, 의열투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변형 / 1958년 현 거주자의 아버지인 신창원이 구입했으며, 그후 여러번 소유자가 바뀌었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 당시 초가 지붕을 개량했다. |
| 정의 | 풍기광복단·광복회 등에서 활동했던 한훈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홍주의병/광복단/대한광복회/광복단 결사대/암살단 |
| 관련 인물 | 한태석/채기중/양제안/김병순/윤기중/윤상보/김형규/이근영/유학주/기명섭 |
| 관련 내용 |
한훈(韓焄, 1890~1950)은 충남 청양 출신으로 1906년 청양 칠갑산에서 일본군과 항전하다 전사한 외숙(外叔)의 유언을 듣고 그의 친형인 한태석(韓泰錫)과 함께 홍주의병에 참여하였다. 1913년에는 경북 풍기에서 채기중(蔡基中)·양제안(梁濟安) 등 의병출신들이 중심이 된 비밀결사 광복단(光復團)에 참여했다. 1915년 대구에서 조직된 대한광복회에 참여한 한훈은 전라도 지부에서 의열투쟁과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대한광복회는 1918년 1월 주요 구성원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크게 와해되었으나 그는 체포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3·1운동 후 활동을 재개한 그는 1920년 6월 김병순(金炳淳)·윤기중(尹奇重)·윤상보(尹祥普)·김형규(金衡圭)·이근영(李根榮)·유학주(柳鶴柱)·기명섭(奇明燮) 등과 함께 광복단 결사대를 조직했다. 광복단 결사대는 조선총독과 정무총감, 이완용·송병준 등 친일파를 암살할 것을 결의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1920년 8월에는 김상옥을 중심으로 친일파 처단을 목적으로 조직된 암살단과 연합하였다. 그를 비롯해 광복단 결사대와 암살단원들은 1920년 8월 24일 미국의원단이 남대문역에 도착할 무렵 이를 환영 나온 조선총독 및 정무총감을 암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미위원단의 방문을 계기로 경기도 경찰부의 예비검속이 이루어져 체포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한우석 등 16인 판결문」, 1921년 11월 15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한훈, 「자필이력서」, 1945. 김상기, 「한훈의 항일투쟁과 광복단」, 『호서지방사연구』, 경인문화사, 2003, 495~514쪽. 장석흥, 「광복단결사대의 결성과 투쟁노선」, 『한국근현대사연구』 17, 한국근현대사학회, 2001, 45~6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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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청양군 사양면 흥산리 |
|---|---|
| 주소 | 충남 청양군 남양면 흥산리 216 |
| 도로명 주소 |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 거북미길 44-15 |
| 위치 고증 | 한훈은 1946년 작성한 「자필이력서」에 본적을 청양군 사양면 흥산리로 기록하였다. 사양면은 1987년 면명(面名) 개칭으로 남양면이 되었으며, 해방 후 한훈이 논산군 두마면 정장리에 거주할 때 함께 생활했던 친족인 한준수의 고증으로 생가를 확인하였다. |














한훈 체포 관련기사(『동아일보』, 1920년 8월 26일)
한훈 자필이력서(1945년)
한훈 생가(정면)
한훈
한훈 생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