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상춘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면적이 3천여평에 이르렀던 상춘원 대지에는 현재 사찰 묘각사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19년 1월경 천도교 지도부가 수차 모임을 갖고,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한 독립운동 계획을 논의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천도교 |
| 관련 인물 | 손병희(孫秉熙)/최린(崔麟)/오세창(吳世昌)/권동진(權東鎭) |
| 관련 내용 | 낙산 남동쪽 자락에 위치한 상춘원(常春園)은 1912년 천도교에서 매입해 천도교회의 3대 기념일 행사를 비롯한 각종 모임을 열던 곳으로, 교주 손병희가 별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1919년 1월경 권동진·오세창·최린 등 천도교 지도부는 손병희가 머물던 상춘원에서 수차례 모임을 갖고, 파리강화회의 개최에 즈음한 국내·외 정세와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하여 대대적인 독립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손병희는 독립운동의 3대 원칙으로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의 방침을 제시했다. 상춘원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손병희가 1922년 5월 19일 6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2년 5월 17일, 「손병희씨 위독」. 「근우회 경성지회 원유회에 관한 건」(1928.10.23)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내외항일운동문서. 「최린선생의 자서전 중 원문」; 이병헌, 『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출판국, 1959, 47쪽. 陣內六助, 『(대정6년) 경성부관내 지적목록』, 京城共同株式會社, 1917, 2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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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숭인동 157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숭인동 7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 1922년 5월 17일자 등 당시 신문에 상춘원의 위치를 ‘동대문 밖 상춘원’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근우회 경성지회 원유회에 관한 건」(1928.10.28)에는 ‘숭인동 157 상춘원’이라고 해서 그 주소지를 적시하고 있다. 1917년 발행된 「(대정6년) 경성부관내 지적목록」에도 숭인동 157번지 대지 3,259평 땅의 소유주로 천도교 대도주 박인호의 이름이 올라 있어, 이곳이 상춘원 자리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당시의 숭인동 157번지는 현재 종로구 숭인동 72번지로 지번이 통폐합된 상태이다. |














상춘원 터
상춘원
창신동 155번지에 잘못 설치된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