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영역

  • 지역별
  • 운동별

사적지 찾아보기

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오수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시장)
상태 멸실 / 장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고, 현재는 공터로 남아 있다.
정의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에서 장날을 기해 대규모 만세시위운동이 발생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3.23 임실군 오수장터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기송/오병용/이만의
관련 내용 3·1만세운동의 불길이 임실지역에까지 번져 임실군 오수리에서는 1919년 3월 10일 오수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임실군내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오수공립보통학교에서의 1차 만세운동은 일본인 교장이 교사들과 함께 학생과 학부형에게 시위를 자제할 것을 당부하여 금세 잠잠해지고 말았으나, 학생들의 자발적인 시위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오수장날인 3월 23일에 오수장터에서 2차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3월 23일의 만세시위를 사전에 면밀히 계획하고 주도한 인물은 이 지역 유지인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 이었다. 이들은 천도교 및 기독교인들과 연락하여 장날인 3월 23일 오후 2시를 기하여 오수장터에 모여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8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군중들은 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된 이기송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로 몰려갔다. 이 가운데 80여 명이 주재소 안으로 몰려가 이기송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자 당황한 일본인 순사는 위세에 눌려 이기송을 석방하였다. 시위대의 사기는 더욱 치솟았고 시위군중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 최대 2,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시장 내의 일본인 상점을 완전히 파괴하고 면사무소를 점령하였다.

이 날 저녁 남원헌병분견대와 임실경찰서에서 파견한 무장병력이 대거 출동하여 시위대를 향해 무자비한 발포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다. 이튿날부터 단행된 검속으로 체포된 주모자 이기송은 징역 7년형이, 오병용은 징역 3년이, 이만의는 징역 2년형이 언도되었다.
참고 문헌 「이기송 등 23인 판결문」, 1919년 7월 3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기송 등 14인 판결문」, 1919년 9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만의 판결문」, 1920년 2월 2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병헌,『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 출판국, 1959, 90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504~507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
주소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325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이기송 등 23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김성태씨(83) 등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옛 장터의 위치가 현재 농협 하나로마트 뒤편 공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단영역

관련사이트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천읍 삼방로 95 전화: 041-560-0441 팩스 : 041-560-0426 
 Copyright 2014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