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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진영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시장)
상태 변형 / 전통재래시장이라는 간판이 입구쪽에 있으며 옆 쪽에 새 시장이 생겼고, 건물들은 모두 현대화되었다.
정의 1919년 3월 31일과 4월 5일 김해군 하계면 진영리의 청년층과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3.31 김해군 진영장터 독립만세시위/1919.4.5 김해군 진영장터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우현(金禹鉉)/김성도(金成濤)/김정태(金廷泰)/김용환(金容煥)/안기호(安騏鎬)/김종만(金鍾萬)
관련 내용 김해군 하계면 면서기 김우현(金禹鉉)은 신문을 통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1919년 3월 29일 김성도(金成濤)·김정태(金廷泰)·김용환(金容煥)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각자 돈을 갹출하여 포목상 김정태에게 재료를 사오게 해, 하계면 여래리 골짜기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장날에 거사하기로 하였다. 3월 31일 장날 오후 1시경 많은 장꾼 속에서 5명의 청년이 광목 태극기를 들고, 종이 태극기를 나눠주며, 독립만세라고 쓴 전단을 뿌리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많은 군중들이 호응했지만 김성도 등이 헌병에 체포되면서 시위는 확대되지는 못했다. 다시 다음 장날인 4월 5일 하계리 서당에 다니던 안기호(安騏鎬)와 김종만(金鍾萬)이 '독립군대장 안기호'라 쓴 깃발을 들고 학생 30여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시장으로 돌진하여 만세를 불렀다. 수백 명의 장꾼들도 일제히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군중들은 일본헌병과 충돌하였고, 헌병이 쏜 총에 2명이 부상하고, 시위군중들은 헌병을 구타하기도 했다. 안기호와 김종만 등이 체포되었으나 당시 17세의 소년이었으므로 구속되지는 않았다.
참고 문헌 「폐쇄지적도」.
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 「金海郡 下界面 進永里 地籍原圖」, 1913.
朝鮮總督府, 「朝鮮五萬分一地形圖 第5號 ; 馬山」, 1926.
朝鮮總督府, 『朝鮮地誌資料』, 1919.
「김성도 등 4인 판결문」, 1919년 5월 1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동아일보』, 1924년 4월 10일, 「進永市場問題, 競賣하기로 決定」.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217~218쪽.
진영읍지편찬위원회, 『진영읍지』, 삼성기획, 2004, 425~428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김해군 하계면 진영리
주소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 235-17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성도 등 4인 판결문」 및 『독립운동사』 3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 제5호 ; 마산」에서 진영장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진영재래시장 상인회장인 김정무의 증언을 통해 진영장터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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