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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의숙 및 보명학교 3·1운동 독립선언문 제작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변형 / 기장 장관청은 당초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였으나, 지금은 정면 8칸, 측면 2칸으로 변형되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나 기와는 최근 누수를 막기 위해 시멘트 몰탈을 덮어서 지붕 윤곽만 드러난 상태이다. 이곳 주위로 도로가 개설될 예정이라 한다.
정의 1910년 개설된 명정의숙과 보명학교가 사용했던 건물로 기장장터 3·1만세시위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든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7 기장광복회 사건
관련 조직 기장광복회 
관련 인물 김약수(金若水), 오기원(吳基元), 김도엽(金度燁), 박세현(朴世鉉), 권은해(權銀海), 권상중(權商重), 김두봉(金枓奉)
관련 내용 기장의 첫 사립학교인 보명학교와 명정의숙(明貞義塾)은 1910년 권상중(權商重)이 기장 지역내 지주들과 함께 사재를 털어 설립하였다. 명정의숙은 여학교로 남학교인 보명학교와 같은 건물에 있었다. 명정의숙은 처음 동부리 하마정 못미쳐 미나리밭 물레방아 앞에 있었던 것을 1913년 현 장관청 자리로 옮겼다. 이 학교는 여성계몽교육보다 항일지하운동에 더 열중하였다. 교장이었던 박세현(朴世鉉)은 당시 기장광복회 총무로서 기장청년들과 함께 항일투쟁 거사를 준비하였다. 또 그는 교가 등을 만들어 배일사상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1917년 기장광복회 거사계획이 탄로나 회장 김약수(金若水)는 도피하고 총무였던 박세현은 일제경찰에 잡혀가 고문 끝에 부산형무소에 옥사했다. 당시 광복회원으로 기장의거를 준비하고 있던 청년들 오신근·김도엽·오기원 등 10여 명은 3차례에 걸쳐 경찰에 잡혀가 심문을 받는 곤욕을 치렀다.

보명학교와 명정의숙 출신들은 기장지역 3·1운동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 기장지역 사회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특히 이들은 기장 3·1만세시위 주도인물로 잡혀가 옥사한 구수암의 장례를 면민장으로 이끌어 내는가 하면 장례 때 명정의숙생들이 조사를 읽고 만장기를 앞세워 일제 경찰에 항의하는 등 기장지역 사회운동에도 앞장섰다. 이 학교를 통해 김도엽·김두봉·권은해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탄생하였다. 또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만세시위를 준비하기도 하였다. 이곳은 조선시대 장관청 자리로 명정의숙과 보명학교가 이곳을 교사로 사용하였다.
참고 문헌 「토지대장」.
「기장군 읍내리 동부동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2.
「김도엽 등의 판결문」, 부산지방법원, 1919년 5월 1일.
부경역사연구소,『 시민을 위한 부산인물사』, 선인, 2004, 14-16쪽.
공태도,『 남기고 싶은 사진』, 기장향토문화연구소, 2008, 23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 216
주소 부산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16
도로명 주소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읍내로68번길 23-1
위치 고증 「김도엽 판결문」을 통해 관련사실을 알 수 있고, 또 기장향토문화연구소장인 공태도의 증언을 통해 이곳이 명정의숙과 보명학교 교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장관청 건물이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토지대장」및「지적원도」를 통해서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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