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하동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지연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도로 및 시설물의 증가로 당시의 모습이 상당히 변형되었다. |
| 정의 | 1950년 7월 25일 국군 제5사단 제15연대가 하동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 제1연대 1개 대대병력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전투를 수행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호남 지역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5사단, 북한군 제6사단 |
| 관련 인물 | 조남철, 방호산 |
| 관련 내용 |
1950년 7월 20일 경 대전이 실함될 무렵 북한군 제6사단이 호남지역으로 빠른 속도로 남하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은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호남지역 방어를 위한 대책이 전혀 수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거의 행정부대나 다름없던 국군 제5사단이 주변 인근의 병력을 모아 방어부대를 급조하였다. 국군 제15연대는 제5사단과 제7사단의 남은 병력과 전남 여수·순천 일대에서 1950년 7월 12일 및 13일 자원 입대한 고교 1~2학년 학도병 180여 명 등으로 급조된 부대였다. 여수에서는 제15연대 조남철 소령이 여수 서초등학교에서 현재 전황이 매우 다급해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들의 지원을 호소했다. 마침 순천에 피난한 신익희, 이범석 등의 시국강연으로 이 지역에서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다. 여수와 순천을 비롯해 광양, 벌교, 보성, 강진 등지에서 지원한 학도병들은 순천역에 주둔하고 있던 제15연대에 입소하여 약 10일간 제식훈련, 총검술, 각개 전투훈련 등을 받았다. 학도병들은 총 한번 제대로 쏘지도 못하고 7월 20일 여수 쪽으로 출동했다가 불리한 전황과 병력의 열세로 남원으로 되돌아 왔다. 이후 구례를 거쳐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인 25일 오전 1시 화개장터 뒤쪽 능선에 배치되었다. 이들은 병력규모와 화력에서 크게 열세였지만 북한군 제6사단 제1연대 1개 대대 병력과 맞서서 3시간 동안 지연전을 전개하였다. 이 전투에서 30여 명이 전사, 혹은 부상을 입었고, 나머지 병력은 진주로 철수했다. |
| 참고 문헌 |
육사 화랑대연구소,『 한국전쟁시 학도의용군』, 육군본부, 1994, 110-118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430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275-27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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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
|---|---|
| 주소 | 경남 하동군 면 탑리 758-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시 학도의용군』에 의하면, 1950년 7월 25일 화개장터 일대에서 제5사단과 제7사단의 남은 병력과 전남 여수, 순천, 벌교 등지의 시·군(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원 입대하여 학도병을 편성, 국군 제15연대에 배속되어 북한군과 접전을 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매년 대한민국학도의용군회가 전몰학도의용군 추념식을 거행하여 그들의 자취를 알리고 있다. |














화개장터 전경
섬진강 너머에서 바라본 옛 화개장터
하동 제5사단 제15연대 전투지 원경
하동 육군 제5사단 제15연대 학도병위령비
충혼탑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