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인제 현리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당시의 전투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51년 5월 국군 제3군단이 중공군 2개 군과 북한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고 방어에 실패하여 대규모 피해를 입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중공군 5월공세 |
|---|---|
| 관련 조직 | 국군 제3군단 제3사단, 제9사단, 공군 제1군, 제27군, 북한군 제6사단, 제12사단, 제3사단 |
| 관련 인물 | 국군 제3군단장 유재흥 |
| 관련 내용 | 현리전투는 국군 제3군단(유재흥 중장)이 중공군의 5월공세를 받아 큰 피해를 입은 전투이다. 당시 인제 남방 가로리에서 가리봉간을 방어 중이던 국군 제3군단(제3, 제9사단)은 중공군 2개 군(제1, 제27군)과 북한군 3개 사단(제6, 제12, 제32사단)의 공격을 받고 퇴로를 차단 당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군단의 병력들은 중공군의 공격으로 각개로 분산되어 하진부리 부근까지 철수하였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은 국군 제3군단 정면에서 공격을 개시하는 한편 일부 병력을 서측방으로 투입하여 국군 제3군단의 주보급로인 오마치 고개를 점령하였다. 이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국군 제3군단은 전방의 압력에 밀려 현리에서 분산된 채 산악지대를 따라 70㎞를 후퇴한 후 하진부리 부근에 집결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게 되었다. 이 전투로 국군 제3군단은 지휘체계가 와해되고 많은 병력 손실을 입었을 뿐 아니라 주요장비를 거의 파기 또는 유기하게 되었다. 반면에 북한군과 중공군은 속사리와 강릉지역에 이르는 큰 돌파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중, 1996, 550-566쪽.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현리전투』, 1988, 53-19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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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강원도 홍천군 신남면 하남리 |
|---|---|
| 주소 | 강원 인제군 상남면 하남리 산 396-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중권 550-566쪽에 의하면, 국군 제3군단이 현리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포위망에 걸려 큰 피해를 입었음이 확인된다. |














오미재 돌파 상황(1951. 5. 17)
중공군 5월 공세(1951. 5. 16)
현리전투전적비(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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