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시흥지구전투사령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초기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부대 건물의 신축으로 당시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
| 정의 | 북한군이 남침하여 서울을 점령하자 국군 잔류병들을 모아 한강방어선 전투를 지휘했던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50 한강선 방어전투 |
|---|---|
| 관련 조직 | 육군 혼성 제2사단, 육군 혼성수도사단, 육군 혼성 제7사단, 보병학교 |
| 관련 인물 | 김홍일, 채병덕 |
| 관련 내용 |
북한군 전차대가 돈암동, 동대문, 창경원 등지로 진입했다는 보고를 접한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은 1950년 6월 27일 오전 11시에 육군본부 참모와 재경 지휘관 연석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서 그는 육군본부를 시흥 보병학교로 철수시킬 것을 명령하고, 28일 오후 2시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했다. 시흥지구전투사령관에 임명된 김홍일 장군은 즉시 창동과 미아리전투를 끝으로 지휘체계가 무너진 채 무질서하게 분산되어 한강을 건너온 각 부대의 병력을 수습하고, 혼성 수도사단, 혼성 제7사단, 혼성 제2사단 등을 편성하여 안양천에서 광진교에 이르는 한강방어선을 구축하여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였다. 당시 군 수뇌부와 미군 측에서는 한강선에서 3일간 저지할 것을 목표로 했으나, 사령관 김홍일 장군 주도 아래 이루어진 한강방어선 지연전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6일간 지연시켰다. 한강방어선이 조기에 무너졌다면 미군은 지상군과 전투장비를 투입할 시기를 놓쳐 전세를 만회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방어시간을 지연시킴으로 향후 전쟁의 대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을 제공하였다. 그 후 김홍일 장군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모체로 창설된 국군 제1군단장이 되어 계속해서 지연전을 지휘하였다. |
| 참고 문헌 |
육군본부, 『역대참모총장 연설문집』 제1대-5대, 1982, 62-63쪽. 백선엽, 『길고 긴 여름날 1950년 6월 25일』, 지구촌, 1999, 49-50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3, 2006, 138-141·168-169쪽. 김웅수, 『회고록』, 새로운사람들, 2007, 162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독산동 |
|---|---|
| 주소 | 서울 금천구 독산동 426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백선엽 장군 회고록 및『6·25전쟁사』3권에 의하면 시흥지구전투사령부는 현 육군 도하단이 위치한 곳에 있었다. 현재도 공병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쉽게 위치를 비정할 수 있었다. |














시흥에서 전선투입을 위해 작전을 하달 받는 국군 병력(1950년 6월 29일)
시흥역에서 본 시흥지구전투사령부 터
한교 사무처장 시절 장개석과 함께한 김홍일 장군(1946년 5월)
시흥지구전투사령부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