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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장사동 상륙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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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가수호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반격북진작전
종류 기타(해안)
상태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모습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
정의 1950년 9월 14일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명부대)가 인천상륙작전을 기만하기 위해 문산호(LST)로 상륙작전을 전개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50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관련 조직 독립 제1유격대대, 북한군 제5사단 
관련 인물 이명흠 대위, 정일권 소장, 마상철
관련 내용 1950년 9월초 육군본부는 1개 대대 규모의 유격대를 해상으로부터 장사동 해안에 상륙시켜 북한군 제5사단의 후방을 교란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작전을 위하여 이명흠 대위가 지휘하는 독립 유격대 제1대대가 차출되었다. 이 유격대는 1950년 8월말 경남 밀양에서 편성되었으며, 그 대부분의 병력은 학도병들이었다.

780여 명의 출동부대를 탑재한 해군 수송선 LST 문산호는 1950년 9월 14일 오후 4시 부산을 출항하였으며, 목표지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미 해군 하트먼 소장이 지휘하는 제95.2 기동함대의 구축함 엔티코트호의 호송을 받아 15일 새벽 5시 쯤 장사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문산호에 탑승한 유격대는 심한 파도에 밀리게 되어 연안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결국 대대는 장사동에 주둔하고 있던 1개 대대규모의 적으로부터 맹렬한 사격을 받으면서 상륙을 감행하였고, 가까스로 해안에 반월형의 진지를 구축하고 장사동 남쪽의 고지를 탈취하였다. 이 작전은 인천 상륙작전에 앞서 소규모의 위장된 일개 상륙작전이었지만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총반격전을 유리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견제적인 조공의 역할을 하였다.

이 작전으로 문산호 승조원 등 110명의 부상자를 포함하여 700여 명을 구조하였으나 129명이 전사하였으며, 조치원호가 철수할 때까지 미처 배에 오르지 못한 39명이 적의 포로가 되었다.
참고 문헌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6, 1970, 577-581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405-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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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주소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74-1 일대
도로명 주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동해대로 3592 일대
위치 고증 『한국전쟁사』6권에 의하면, 1950년 9월 14일 육군본부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는 인천상륙작전을 기만하기 위해 문산호(LST)로 장사동 상륙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좌초된 상황에서 상륙전을 시도하여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북한군 제2군단을 교란하였음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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