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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남강정사 - 장태수 순국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가옥
상태 원형보존 / 원형 그대로 잘 관리되고 있으며, 입구 안쪽과 바깥쪽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의 일제의 은사금을 거절한 장태수가 순국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경술국치
관련 조직 신명학교(新明學校) 
관련 인물
관련 내용 장태수(張泰秀, 1841~1910)는 1841년 김제군 금구면 상신리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제(一逌齊),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1861년 21세 때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副正字)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후 일본의 국권 침탈 만행이 날로 심해지자, 이를 한탄한 끝에 고향에 돌아와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신명학교(新明學校)를 창설, 배일사상을 고취시켰다.
경술국치 후 일제가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은사금을 전달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헌병대가 세 아들을 잡아가고 그를 체포하려 하자 1910년 음력 11월 11일에 조상의 사당에 통곡으로 고별하고 단식에 들어갔다. 단식 중에 ‘고대한동포문(告大韓同胞文)’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1910년 음력 11월 27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남강정사는 장태수의 부친이 1800년경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1983년 8월 24일 전라북도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되었다. 이 가옥은 40㎝ 정도의 축대를 쌓은 후 세운 정면 4칸, 측면 4칸의 초가집이며, 집 부근의 서강사에서는 장태수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참고 문헌 송상도, 『기려수필』, 국사편찬위원회, 1971, 172~17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7, 1976, 223쪽.
전라북도 『근대문화유산 목록화 및 조사보고서』, 2004, 542쪽.
「장태수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제군, 『金堤의 傳統』, 1982, 65~68쪽.
나종우, 『새롭게 조명하는 김제의 인물 33인』, 김제시·김제문화원, 2009, 95~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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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김제군 금구면 상신리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 56-7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기려수필』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장태수가 순국한 집은 남강정사라 하여 현재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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