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형산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원형이 거의 대부분 남아 있다. |
| 정의 | 1950년 9월 12일 국군 제3사단 제18연대가 북한군 제5사단으로부터 형산을 탈환, 형산 강변의 방어진지 일부를 회복하고, 연이어 14일에는 23연대가 연일을 탈환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안강 전투, 경주 북방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3사단, 국군 제18연대, 북한군 제5사단 |
| 관련 인물 | 김석원, 마상철 |
| 관련 내용 |
1950년 9월 6일 국군 제3사단은 형산강을 연한 방어진지 구축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형산 우측의 중단동에서 연일에 이르는 3㎞ 구간의 방어선은 지형이 대안보다 저지대로 북한군 제5사단의 감제 하에 들어 모든 행동이 노출되었다. 사단은 제26연대에 제8연대 제3대대를 배속해 다음날 131고지에 배치하였다. 131고지에는 제23연대의 2개 중대가 이 고지로 남하한 북한군 제5사단을 격퇴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로써 미 처치 특수임무부대가 운제산을 공격할 때 이를 공격의 발판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제18연대는 9월 9일 이른 새벽에 연대 수색대를 운제산에 침투시켜 적이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연대는 197고지를 탈환해 운제산으로 진출한 적의 퇴로를 차단할 계획하에 제1대대장에게 그 임무를 부여하였다. 제1대대는 이날 저녁 화산동 동쪽 263고지로 진출하였고, 다음날 6시간에 걸친 치열한 교전 끝에 목표를 점령하였다. 9월 12일 오후에 제18연대는 마침내 형산을 탈환하고 형산강변의 방어진지 일부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북한군 제5사단은 제18연대와 좌측방 낙산에 배치된 제1연대의 중간지역으로 후퇴를 시작하였다. 이 전투에서 적은 2,000여 명이 사살되고, 50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 적은 운제산과 형산 및 곤제봉을 빼앗긴 9월 12~13일에 이르러 공세작전에서 수세로 전환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570-575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71-377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경주군 강동면 유금리 |
|---|---|
| 주소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 1079-2 일대 |
| 도로명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강동로 63 일대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국군 제3사단이 1950년 9월 6일부터 9월 14일까지 형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의 공격을 방어하여 격렬한 전투를 수행하였음이 확인된다. |














형산과 그 앞을 흐르는 금호강
형산의 전경
형산과 제산
형산 북쪽 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