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강구교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기타(교량) |
| 상태 |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모습이 훼손되지 않고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50년 8월 9일 제22연대장 강태민 중령이 제1대대 병력이 미처 철수하기 이전에 강구교를 폭파하여 많은 병력들을 희생시키고 작전의 차질을 빚은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영덕 전투, 포항 전투 |
|---|---|
| 관련 조직 | 국군 제3사단, 북한군 제5사단 |
| 관련 인물 | 강태민, 김석원, 마상철 |
| 관련 내용 |
1950년 8월 6일 북한군 제5사단이 영덕의 207고지 - 181고지를 점령함으로써 국군 제3사단 영덕 방어선이 와해되었다. 이때 국군 제22연대 제2대대는 강구교 북쪽 150고지에서 북한군 제5사단의 공격을 받고 한밤중에 분산된 채 남쪽으로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대대가 철수를 개시할 무렵인 8월 9일 새벽 5시 무렵 갑자기 강구교에서 엄청난 불기둥과 함께 굉음이 치솟았다. 강구교가 폭파된 것이었다. 강구교의 폭파는 사단장의 승인도 없이 제22연대장 강태민 중령이 독단적으로 명령한 결과였다. 강구교는 영덕에서 포항으로 진출할 경우 건너야 하는 강구에 가설된 교량이고, 일대의 오십천은 수심이 깊어 도섭이 불가능해 전술적으로 중요한 시설이었다. 국군 제3사단은 제22연대의 1개 대대 병력이 강구교 북쪽 150고지에서 적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유일한 퇴로였던 강구교가 폭파되자, 충격과 함께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일부 병력은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헤엄쳐 건너다 익사하였고, 나머지는 강구에서 어선을 이용하여 철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병력들이 희생되었다. 제22연대장의 오판은 예하부대 병력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초래하였고, 또한 당시 반격을 계획하고 있던 사단에서는 유일한 기동로인 교량이 폭파됨으로써 불가피하게 반격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550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33-33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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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
|---|---|
| 주소 | 경북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84-1천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국군 제22연대가 1950년 8월 9일 우곡리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강구교를 폭파하였고 미처 철수하지 못한 아군 병력이 상당수 희생되었음이 확인된다. |














강구교 북측 사거리 일대의 전경
강구교의 모습
오십천 남쪽 능선의 모습
오십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