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왜관교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기타(교량) |
| 상태 | 원형보존 / 왜관교와 왜관철교는 부분 보수가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전쟁 당시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50년 8월 4일 아침 미 제1기병사단이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고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낙동강상의 중요 교량인 왜관교를 폭파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김천 전투, 왜관 전투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미 제1기병사단장 게이 소장, 김영호 소장 |
| 관련 내용 |
미 제1기병사단은 일부 병력으로 치열한 교전을 수행하면서 철수하여 1950년 8월 3일부터 4일 아침에 걸쳐 낙동강 동안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지례 - 김천에서 왜관으로 이동한 미 제1기병사단의 최종 후미였던 미 제5기병연대는 거의 1개 대대를 상실하였으며, 왜관 남서쪽의 상주 도로에서 야간 철수를 엄호하고 있던 미 제8기병연대 제1대대도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왜관을 통과하는 주요 교량과 철교는 미 제1기병사단이 철수하는 대로 폭파하게 되어 있었다. 8월 3일 새벽에는 많은 피난민이 이 교량지점에 쇄도하였고 후미가 철수할 무렵에는 더욱 혼잡해지자 게이 사단장은 피난민을 서쪽으로 축출하고 부대가 교량을 통과하면 폭파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피난민이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에 이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사단장 게이 소장은 다리가 파괴되면 수많은 피난민의 활로가 차단되므로 사단장으로서는 대단히 어려운 결심이었다. 그러나 사단장은 마침내 작전상 할 수 없이 교량을 폭파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때 미 제8군은 왜관교 폭파와 함께 8월 4일 아침까지 미 제8군의 전선 정면의 낙동강상의 모든 교량을 폭파하였다. 미 제1기병사단은 경북 왜관에서 현풍 북쪽에 이르는 대구 서측면의 방어지역을 담당하여 낙동강변의 북에서 남으로 미 제5기병연대, 미 제8기병연대, 미 제7기병연대 순으로 배치하여 북한군의 도하작전에 대비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192-194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13-31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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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
|---|---|
| 주소 |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807-1 왜관교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미 제1기병사단이 1950년 8월 3일부터 8월 4일까지 왜관교와 낙동강상의 모든 교량을 폭파하였음이 확인된다. |














파괴된 왜관교를 사이에 두고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미 제5기병연대(1950년 8월 5일)
왜관철교 안내표지
왜관철교 전경
왜관철교의 모습
왜관철교 정면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