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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남포정사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상태 원형보존 / 진주성 내에서 원형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사적지이다.
정의 1919년 3월 18일 진주군 진주면 내 각처의 대규모 군중이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재화(金在華)/정용길(鄭鎔吉)/심두섭(沈斗燮)/이강우(李康雨)/권채근(權采根)/강달영(姜達永)
관련 내용 1919년 2월 말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였다가 3·1운동을 목격한 김재화·정용길·심두섭 등은 귀향 후 김재화의 집에 모여 비밀회합을 가지면서 진주에서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때 이강우·권채근·강달영 등도 가세하였다.

3월 18일 12시 진주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중앙시장·재판소·촉석공원·매립지·대안동·촉석루 입구·봉곡동 등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천 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오후 4시경에는 시위군중이 2만여 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경남도청 앞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까지 진출하였다. 일제 헌병과 경찰들은 시위대에게 잉크물을 던져 검거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시위가 더욱 산발적이 되어 야간에도 만세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그리고 3월 19일과 20일, 21일에도 상가철시와 함께 맹렬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4일에 걸쳐 전개된 진주 지역의 독립만세시위는 기생·걸인들까지 단체로 참여할 정도로 전민족적 성격의 시위였다. 일부 일제 측의 기록에서 시위군중을 8천 명 정도로 평가절하 하고 있으나 진주장날을 이용하여 진주뿐 아니라 서부경남 각지의 민중이 함께 항거하였다는 점에서 경남의 대표적 만세시위라 하겠다.

1618년 건립된 영남포정사는 경상도 우병영의 관문으로 활용되었고, 1895년 진주관찰부, 1896년에는 경상남도 관찰사의 선화당 관문이 되었다. 이때 영남의 정사를 선포하는 행정중심지라는 의미로 영남포정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25년 경남도청이 부산부로 옮겨 갈 때까지 그 정문으로 활용되었다.
참고 문헌 「朝鮮五万分一地形圖; 晋州」, 조선총독부, 1918.
「김재화 등 판결문, 1919년 6월 17일, 1919년 9월 6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남도경찰부,『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10∼11쪽.
勝田伊助,『晋州大觀』,晋州大觀社, 1940, 38쪽.
추경화,『진주항일운동사』, 진주문화원, 2008, 102∼108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내성동
주소 경남 진주시 남성동 73-1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재화 등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고등경찰관계적록』에 시위대의 목표지점이 경남도청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진주대관』에는 옛 도청의 정문으로 영남포정사의 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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