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정읍 칠보발전소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변형 / 1945년 4월 제1호기 준공이후 1965년과 1985년 2, 3초기가 각각 준공되었다. 발전소 인근에 충혼탑이 건립되어 매년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
| 정의 | 1951년 1월 14일 새벽, 회문산지구 빨치산 1,900여 명이 기습하였을 때, 전북 제18전투대대와 지서 병력이 그들을 격퇴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회문산지구 빨치산토벌작전 |
|---|---|
| 관련 조직 | 한국 제18전투경찰대대, 북한군 빨치산 |
| 관련 인물 | 차일혁(車一 赫), 김정환 |
| 관련 내용 |
중공군 제3차 공세가 개시된 직후 회문산 일대에서는 북한군 빨치산들이 한국군경의 후방을 기습하여 교란하고 있었다. 1951년 1월 14일 새벽 5시 후방지역인 정읍군 칠보발전소에 전북도당위원장이 지휘하는 회문산 지구 빨치산 1,900여 명이 기습했다. 당시 이곳을 지키고 있던 전북 제18전투대대 2개 중대와 김정환 경위가 지휘하는 지서 병력 45명이 그들과 교전 74명을 사살하고 다발총 2정 1세 소총 2정을 노획했다. 대대장 차일혁 경위는 4개 중대 병력을 동원하여 빨치산을 역포위, 격전 끝에 경비부대를 구출하였다. 대대는 계속 적을 추격하여 제1중대는 명천 320고지와 시산 300고지를 점령하였으며, 제2중대는 발전소 후면 418고지를 탈환하였다. 대대는 이로써 북한군 빨치산들의 발전소 강점 기도를 좌절시켰다. 적이 전열을 정비하여 재차 418고지를 역습하여 한 때 이곳을 빼앗기기도 했으나 16일 재탈환했다. 또한 1951년 3월 15일에도 칠보발전소 동쪽 1㎞ 지점 독고봉에 빨치산 90명이 침입했을 때, 제18전투대대는 6시간의 교전 끝에 74명을 사살하였고, 소총 56정을 노획했다. |
| 참고 문헌 |
한국경찰사편찬위원회,『 한국경찰사』2, 내무부 치안국, 1973, 326-327쪽 차길진,『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 기린원, 1990, 62-7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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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시산리 |
|---|---|
| 주소 |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산 210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에 의하면, 정읍군 칠보면 시산리에 소재하고 있는 칠보발전소를 지키고 있던 전북 제18전투대대 2개 중대와 김정환 경위가 지휘하는 지서병력이 적과 교전하였다. 그 후 3월 중순 칠보발전소가 빨치산의 공격을 받자, 차일혁 경감이 지휘하는 제18전투대는 이들을 물리치고 발전소를 방어했다. |














정읍 칠보발전소 전투지 충혼탑
정읍 칠보발전소 주변 능선
발전소에서 복호삼거리에 이르는 도로
섬진강수력발전소와 일대 능선
전투지 섬진강 수력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