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거제도 포로수용소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후방지원작전 |
| 종류 | 건물 |
| 상태 | 변형 / 현재 포로수용소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 정의 | 1951년 1월부터 1953년까지 유엔군이 북한군, 중공군 그리고 남한에서 의용군으로 징집된 북한군 병사들을 수용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북한군의 남침초기부터 유엔군측의 포로수용소 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부터는 포로 처리에 대한 문제가 중요해졌다. 따라서 유엔군은 1·4후퇴시 포로를 즉각 부산주변에 집결시켰다. 1951년 1월 1일 현재 포로의 수가 13만 7,000명에 달하였으므로, 이는 안보상의 문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엔군의 주된 해상보급 및 증원의 주요항인 부산지역의 군수작전에 방해가 되었다. 유엔군 측은 포로들을 전시 작전에 부담이 없는 곳으로 재배치할 방안을 연구한 끝에 거제도에 격리 수용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거제도는 면적이 약 240㎢ 밖에 되지 않고 숙영지의 건설이나 포로의 처리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었다. 더욱이 거제도에는 20만 명 이상의 주민과 피난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로의 수가 증대되자 유엔군사령부는 최종적으로 거제도를 포로수용소지로 선정하였다. 유엔군사령부는 1951년 1월, 거제도 지역의 4개의 장소를 선정하여 철조망 울타리를 치고 각 구역에는 8개의 막사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1951년 가을 무렵에는 북한군 13만 명과 중공군 2만 명 도합 15만 명의 포로가 이 곳에 수용되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하, 1997, 314-317쪽. 군사편찬연구소,『6.25전쟁사』10, 1995, 281-291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거제군 신현읍 고현리 |
|---|---|
| 주소 | 경남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산 90-8 일대 |
| 도로명 주소 | 경상남도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산90-8 일대 |
| 위치 고증 | 『한국전쟁』하권에 의하면, 1951년 1월 유엔군이 포로를 거제도에 격리 수용시키기로 결정하고, 막사를 구축하여 1953년까지 포로수용소로 활용하였음이 확인된다. |














항의 시위구호가 걸린 거제도 포로수용소
점심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공산 포로
1952년의 거제도 포로수용소 전경
거제도 포로수용소 정문(측면)
거제도 포로수용소 전경
거제도 포로수용소 앞 도로 주변
거제도 포로수용소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