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포항여자중학교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기타(학교) |
| 상태 | 멸실 / 현재 도시개발로 인해 전쟁 당시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
| 정의 | 1950년 8월 10일 국군 제3사단에 배속된 학도병 71명이 사단 후방지휘소가 설치된 포항여자중학교에서 후방지휘소 병력들과 함께 47명이 전사하면서 북한군을 방어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포항 전투 |
|---|---|
| 관련 조직 | 북한군 제5사단, 국군 제3사단, 학도의용군 |
| 관련 인물 | 김석원, 마상철, 학도병 |
| 관련 내용 |
1950년 8월 10일 국군 제3사단 후방지휘소가 설치된 포항여자중학교에는 전날 저녁 의성지구로부터 도착해있던 71명의 학도병이 집결해 있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12사단의 1개 연대 병력은 소티재(우현)의 제25연대 제9중대 방어진지를 돌파하고 포항으로 진출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8월 11일 새벽 4시경 소티재 방향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는 제25연대 제9중대와 북한군 제5사단 1개 연대의 교전에 의한 것이었다. 날이 밝아오며 적이 포항여자중학교 정문을 향해 진격해 전방 50m지점까지 도달하자, 학도병들은 일제히 사격을 집중하면서 적을 저지하였다. 기습사격을 받은 적은 200여 명이 피해를 입었으나 나머지는 흩어진 후 증원 병력과 함께 다시 공격을 재개하였다. 얼마 후 적은 학교 주변에 포격을 집중한 후 공격을 계속하였다. 오후 3시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학도병들은 갖고 있는 실탄과 수류탄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교전을 전개해 50~60명의 적을 사살하였으나, 47명의 아군이 전사하는 인명 손실이 있었다. 이때 후방지휘소 요원들은 이미 철수를 완료한 상태였고 실탄마저 고갈되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학도병들이 북한군의 포항 시내 진출을 저지하는 동안 국군 제3사단 사령부와 기타 지원부대 및 경찰, 그리고 행정기관은 무사히 안전지대로 철수할 수 있었다. 포항여자중학교는 이후 포항여자중학교와 포항여자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556-558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39-34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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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포항시 우현동 |
|---|---|
| 주소 | 경북 포항시 북구 우현동 56 일대 |
| 도로명 주소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장미길 49 일대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1950년 8월 10일 국군 제3사단 후방지휘소가 설치된 포항여자중학교에서 71명의 학도병들이 한국군 제3사단 후방지휘소 병력들과 함께 북한군 제5사단 예하병력의 공격을 방어하여 47명이 전사하면서 적을 지연시켰음이 확인된다. |














학도의용군 전승비(포항여자중학교 앞)
포항여자중학교 진입로
포항여자중학교 교사와 운동장
포항여자중학교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