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작오산 전투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가수호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낙동강방어작전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전쟁 당시의 원형이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1950년 8월 14일 북한군 제3사단이 왜관방어에 중요한 감제고지를 공격하자 미 제5기병연대가 3일 간 공방전을 수행하면서 지켜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왜관 전투 |
|---|---|
| 관련 조직 | 미 제5기병연대 제2대대 |
| 관련 인물 | 게이, 백선엽, 김영호 |
| 관련 내용 |
북한군 제3사단(김영호 소장) 일부병력이 국군 제1사단(백선엽 준장) 좌측을 교란하면서 8월 14일 미 제1기병사단(게이 소장)의 5기병연대 제2대대가 방어하고 있는 왜관 북쪽 작오산(303고지)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303고지는 왜관 일대를 감제함은 물론 경부국도 교량과 철교를 통제할 수 있는 지형이었다. 수중가도를 이용하여 도하한 뒤에 그날 밤으로 미군과 국군 전투지경선 바로 북쪽 고지대에서 국군 제1사단을 공격하여 왔다. 다음날 8월 15일 아침 미 전폭기가 적의 수중가도를 폭파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부대는 남쪽으로 공세를 확장하여 303고지 정상에 배치된 미 제5기병연대 제2대대 1개 중대와 박격포소대가 적으로부터 포위공격을 받고 있었다. 8월 16일 미 제5기병연대는 고지 주변에 있는 북한군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미 제61포병대대와 제82포병대대 B포대까지 가세하여 이날(16일) 하루 종일 적진에 포격을 하였다. G중대는 이틈을 이용하여 303고지에서 철수하였다. 그러나 박격포소대는 미처 철수하지 못하고 전원 적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뒤에 아군이 고지를 탈환했을 때 소대원 전원이 손이 뒤로 묶인채 사살되어 있었다. 8월 17일 새벽 미 제5기병연대 제1대대와 제2대대는 제70전차대대 A중대의 지원을 받으며 303고지를 공격하였으나 북한군 제3사단의 심한 박격포 사격으로 왜관 근교에서 공격을 중지하고 화력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미 제61포병대대에서는 1,159발의 포탄을 적진에 발사하였고, 오후 2시에는 공중폭격을 하였다. 미군 전폭기는 네이팜탄과 폭탄, 로켓포탄, 기관총사격으로 적진을 강타하였다. 미 제5기병연대는 강력한 지원포격 후 오후 3시 30분 보병부대가 공격을 재개하여 8월 17일 오후 4시 303고지를 탈환하였다. |
| 참고 문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5, 2008, 199-201쪽.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상, 1995, 311-31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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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중지리 |
|---|---|
| 주소 | 경북 칠곡군 석적읍 중지리 산40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6·25전쟁사』5권에 의하면, 미 제1기병사단 제5연대 제2대대가 1950년 8월 14일부터 8월 28일까지 작오산 일대의 북한군 제3사단 예하부대의 공격을 방어하여 격렬한 전투를 수행하였음이 확인된다. |














작오산전투 기념비
왜관시내 전경
작오산에서 본 왜관교
작오산 동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