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병철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의열투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생가는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의열단에 가입하여 밀양경찰서 투탄사건과 경북폭탄사건에 가담한 이병철이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의열단 |
| 관련 인물 | 김원봉(金元鳳)/윤세주(尹世胄)/이종암(李鍾岩)/곽재기(郭在驥)/이성우(李成宇)/김병환(金餠煥)/배중세(裵重世)/김상진(金祥振)/이병철(李炳喆) |
| 관련 내용 |
이병철(1887~1925)은 밀양군 부내면 가곡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11월 길림에서 김원봉·윤세주·이종암 등이 조직한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서간도 안동현에 원보상회(元寶商會)라는 미곡상을 운영하면서 상회를 연락기점으로 무기구입, 동지들의 피신, 은닉 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자금을 지원하였다. 1920년 초 김원봉의 지시에 따라 곽재기·이성우 등이 중국 상해에서 구입한 폭탄 16개, 권총 2정, 탄환 100여 발 중 폭탄 3개를 원보상회를 통하여 밀양에 거주하는 김병환에게 송부하였다. 이때 이병철은 옥수수 20포대 속에 폭탄을 숨겨 밀양의 화물운송점으로 부쳐놓고, 기차편으로 밀양까지 가서 화물을 찾아 밀양에서 미곡상을 하고 있던 김병환의 집 마루 밑에 숨겨놓았다. 나머지 폭탄과 권총 등은 다시 옥수수 다섯 포대 속에 나눠 비밀 표식을 한 뒤, 다른 열다섯 포대와 섞어 화물로 위장하고 부산진역의 한 운송점으로 밀송하였다. 이를 배중세가 수령하여 창원군 진영의 강상진에게 보내 그 집 창고에 숨겨두었다. 뒤에 이종암이 이를 가지고 국내 폭탄의거를 계획하였으나 김병환 집에 보관된 폭탄이 일제에 탐지되어 그 실체가 드러났다. 1925년 1월 안동현에서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밀양군 부내면 가곡동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2. 「이병헌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곽재기 등 15인 판결문」, 1921년 6월 2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상북도경찰부,『고등경찰요사』, 1936, 197~199쪽. 박태원,『약산과 의열단』, 백양당, 194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7, 1976, 312~317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1, 1976, 91~94·660~673쪽. 「이병철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영범,『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창작과 비평사, 1997. 김영범,『(한국독립운동의 역사26) 의열투쟁 Ⅰ-1920년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137~138·147~14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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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가곡동 |
|---|---|
| 주소 | 경남 밀양시 가곡동 367 |
| 도로명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멍에실로2길 41 |
| 위치 고증 | 「이병철 공적조서」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밀양군 부내면 가곡동 지적원도」와 현재 지적도를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














이병철 집터 우측
이병철 집터 원경
이병철 집터 좌측
이병철 집터 정면